주요 선진국 중 재정적자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2009년 9월 말 현재 864조5226억엔이다. 사상 최대 규모다. 국가부채를 일본의 인구(1억2000만명)로 나눈 국민 1인당 나라빚은 678만엔(약 8800만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218.6%로 이탈리아(115.8%)나 그리스(111.5%)의 두 배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0년 거품 붕괴 이후 10여년간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정부가 경기부양책에 돈을 쏟아 부으며 낭비한 탓이다. 일본은 2001년까지 무려 11차례에 걸쳐 135조엔에 달하는 재정자금을 경기부양에 투입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데 쓰는 바람에 돈은 돈대로 낭비하고도 경기는 살리지 못했다. 대표적인 게 '상품권 살포' 같은 것이다. 1999년 지역진흥권이란 상품권 7000억엔어치를 전 국민에게 나눠줬지만 저축광인 일본인들에겐 소비진작 효과가 거의 없었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경기회복기에도 계속 불어났다. 일본 경제가 회복세를 탔던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도 200조엔 가까이 나라빚이 늘었다. 정부부채가 너무 많다 보니 재정수입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해 이자상환용 국채를 계속 발행했기 때문이다. 빚을 내 이자를 갚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올 한 해만도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국채 이자비용은 10조2000억엔으로 전체 세수의 26.2%에 이른다. '좀비 경제'라고 손가락질 받을 만하다.

더 심각한 건 국가부채가 줄어들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저성장기에 접어든 데다 저출산 · 고령화로 사회복지 지출 증가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선 과감한 재정개혁과 세금인상이란 고강도 처방이 동시에 필요하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