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2004년 방영돼 세계 미스들의 성(性) 의식을 개방하는 데 '일조'한 미국 드라마 '섹스 & 더 시티'.주인공인 캐리 브래드쇼의 극 중 직업은 성 칼럼니스트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브런치를 함께하며 성에 대한 경험론을 나눈다. 그들이 벌건 대낮부터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는 '맛집'이다.

시즌 6까지 나오는 동안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맛집만 해도 '페이야드' '굿 오브닝' '사라베스' '패스티스' '스시삼바7' 등 수도 없이 많다.

맛집에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뭘까. 헤어진 남자친구의 키스보다 달콤한 음식? 맞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대화,그리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다.

이때만큼은 애인 있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 맛집이란 골드미스들이 앞으로 수십년을 지탱할 우정을 키우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맛집 투어'브런치→쇼핑→식사와 와인'

오전 9시30분:서울 서초동에 사는 이자영씨(37)는 서른두 살을 넘긴 이후 금요일 밤에 '술을 때려 마시는' 경우가 거의 없어 그런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기분이 꽤 산뜻하다. 친구 세 명과 만난 브런치 장소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청담동의 '버터핑거 팬케이크'였다. 팬케이크와 와플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오후 2시.이씨는 "특별한 모임 때는 한남동 하얏트호텔 '파리스 그릴'의 브런치 뷔페를 찾는다"며 "6만원이 훌쩍 넘지만 창가 자리는 예약을 안 하면 잡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오후 2시: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으로 향한다. 삼성동에서 브런치를 먹을 경우에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갤러리아로 돌아온다. 딱히 살 게 있어서라기보다는 아이 쇼핑이 주목적이다.

오후 7시:도산공원 근처 이탈리아 음식점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전채요리와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D.O.C 피자',파스타,와인 1병을 주문하고 티라미슈로 마무리하면 총 16만원(1인당 4만원) 정도 나온다.

"맛집에 남자 만나러 가지는 않느냐고요? 30대 초반까지는 우연한 만남도 바라곤 했지만 이젠 아니에요. 우리들 얘기 풀기도 벅찹니다. " 좀 더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테이블34'를 찾는다. 더치페이를 하기 때문에 이씨가 이날 쓴 돈은 택시비까지 합쳐 10만원을 약간 넘는 정도다. 이씨는 "골드미스의 경제학은 한번 엉덩이 붙이면 오래 앉아 있는 것"이라며 "흥청망청 술 마시고 2차,3차 가는 남자들보다 오히려 씀씀이가 적다"고 주장했다.

◆대학 땐 영화,골드미스 되니 뮤지컬…돈은 중요치 않아

분당 정자동에 사는 배은희씨(34)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뮤지컬을 관람한다. 최근에 본 뮤지컬은 '헤어 스프레이' '시카고'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이다. 대학 시절에는 주로 영화로 문화 욕구를 채웠지만 이제 'R석'으로 대신한다. 배씨는 "토요일 오후 3시 공연으로 일찍 예매하면 R석 같은 S석을 예약할 수 있다"며 "한 달에 한 번 6만~10만원 정도는 적당한 지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뮤지컬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은 '뮤지컬→저녁식사→와인바'로 코스가 이어진다.

신사동에 사는 신은주씨(36)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후로 3박4일간 홍콩을 다녀왔다. 홍콩은 시내 자체가 면세점인 데다 11월 말~1월 초 명품을 30%가량 할인하는 '메가세일'이 열려 잘만 만나면 명품을 '착한 가격'에 건질 수 있다.

중학교 교사인 김연주씨(33)는 소득이 높진 않지만 방학마다 해외로 나간다. 지난해 여름에는 20일간 인도를 다녀왔고,올 겨울에는 12박13일로 일본을 갔다왔다. 지난 주말에는 스키장에도 다녀왔다. 인터뷰에 응한 골드미스들은 한결같이 "뭔가를 결정할 때 '비싸다'는 것은 더 이상 결격사유가 못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름다운 싱글'이 아닌 '아름다운 개인'이 돼라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고 하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다. 주말마다 값 비싼 브런치를 먹고 '마놀로 블라닉' 구두에 열광하는 캐리의 모습은 '섹스 & 더 시티'에 비쳐진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골드미스'에 대한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아야 하고 경제력 건강 등 자신의 삶은 철저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어찌보면 기혼자보다 더 책임이 요구되는 삶이다. 이에 대해 《싱글예찬》(싱글즈 편집부 · 북하우스)은 '아름다운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1인 가정의 가장이 돼야 하고,커리어 및 경제력을 관리해야 한다며 '스스로 당당한 인생의 경영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특히 한껏 콧대가 높아진 골드미스들에게 '아름다운 싱글'이 아닌 '아름다운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따끔한 충고를 날린다.

"싱글들의 입에서는 '최소한'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온다. 휴가는 최소한 어디로 가야 하고,데이트는 최소한 어디에서 해야 하며,차는 최소한 무엇을 타야 한다….그렇게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싱글들의 미래는 진정으로 최소한만 보장돼 있을 뿐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