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운 서울고등법원장(62)은 오는 8일 31년간의 판사생활을 마감하고 법복을 벗는다. 반 평생을 법관으로 보내면서 '사법부 역사의 산 증인'으로 불렸던 이 법원장은 최근 퇴임에 앞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젊은 판사들에게 고언을 쏟아냈다. 'PD수첩 무죄' 등 잇따른 시국사건 판결 논란과 관련해서였다.

이 법원장은 "이번 논란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맡은 형사단독 판사가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법리에 소홀해 독단적인 판단을 했다는 비판에서 비롯됐다"며 "대법원은 이러한 우려와 비판을 고려해 형사단독 판사의 경력을 높이고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법원장도 1990년대 초 형사단독 판사를 지내면서 'PD수첩 무죄'와 같은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언론에서 실제로는 바겐세일을 하지 않으면서 마치 세일을 하는 것처럼 광고해 파는 행태가 보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예컨대 원래 30만원짜리 옷을 '50만원짜리를 30만원에 할인해 판다'며 장사하는 식이었다. 검찰에서는 국민의 공분을 산 이 사건과 관련해 백화점 관계자들을 사기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형사단독 판사였던 이 법원장은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단순히 할인판매라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들이 구입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원래 가격대로 판 만큼 소비자들이 용인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판결은 즉각 국민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심과 대법원은 모두 "소비자들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이 인정된다"며 이 법원장의 판결을 뒤엎고 사기죄를 인정했다.

이 법원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상급법원에서 보다 법리를 폭넓게 살폈는지 다른 판결이 났다"며 "결국 판사 개개인이 노력하고 정진해 나갈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대선배로서 '겸손'을 주문한 것이다.

대법원은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재정합의를 도입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형사단독 사건을 계속 늘려나간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개개 형사단독 판사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후배 판사들이 이 법원장의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보다 책임감 있는 판결을 하길 기대해 본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