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는 경제 파탄이 국민들의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친러시아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의 승리와 현 대통령인 빅토르 유셴코의 패배는 사실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유셴코 대통령은 키예프의 독립과 정체성 회복을 위해 친서방 · 반러시아 정책을 취하면서 러시아와 잦은 마찰을 빚었다. 주요 수출품목인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우크라이나는 국가 파산 상태까지 몰렸다.

2004년 오렌지 혁명으로 쫓겨난 야누코비치 후보의 부활과 유셴코의 추락 등 지정학적 변화는 우크라이나가 경제난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에 주기로 했던 170억달러의 구제금융 가운데 38억달러의 지급을 보류했다. 대선 후 우크라이나 경제정책의 윤곽이 잡힌 후 지급하겠다는 게 IMF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나라 곳간은 텅 비었다. 긴축재정 정책만이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을 지키고 또다른 통화위기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재정적자와 가계부채가 우크라이나의 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다음 달 대선 결선투표에서 야누코비치 후보와 율리아 티모셴코 현 총리 가운데 어느 쪽이 승리를 거두든 새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의 12%에 육박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그들의 선거공약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재정적자 감축에 실패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만성적인 정치 혼란은 대통령과 의회 간 뿌리 깊은 갈등관계에서 비롯됐다. 유셴코 대통령도 티모셴코 총리와의 잦은 충돌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세 차례나 총선을 치를 정도로 정국불안에 시달렸다. 대대적인 헌법개혁을 통해 독립적인 입법기관으로서 의회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는 37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로서 가장 유리한 방법은 방대한 규모의 러시아 정부 금고를 두드리는 것이다. 러시아와 옛소련 연방국인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관계와 흡사하다. 러시아의 구제는 우크라이나 주요 정치세력에 항상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오렌지 혁명으로 시작된 독립 열기는 결국 경제위기로 식어버렸다. 반러를 외친 오렌지 혁명의 수모를 기억하면서도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를 보듬으려 하고 있다. 지정학적 이익과 우크라이나 자산획득의 기회는 물론 옛소련 연방 지역의 안정과 상호무역 활성화 등 얻을 게 많아서다. 친러시아 노선으로의 회귀가 우크라이나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됐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구제하는 건 1994년 페소화 대폭락 당시 미국이 멕시코에 취했던 반응과 유사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 글은 이머징마켓 리서치 회사인 트러스티드 소스(Trusted Sources)의 크리스토퍼 그란빌 관리이사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국가부도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그란빌 <트러스티드 소스 이사>

정리=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