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중앙은행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총재가 해임당하는가 하면 행정부와 의회로부터 통화정책을 간섭받는 등 독립성이 도전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주말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연례회의에서 금융시스템 회복과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고 10일 보도했다. 중앙은행들은 경제위기 이후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를 낮추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했다. 금융시장이 안정되자 올해부터는 위기 이전으로 통화정책을 되돌리는 출구전략을 이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WSJ는 출구전략 이행을 늦추려는 정치적 압력이 가중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의 사례로는 한국의 기획재정부 차관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10년 만에 다시 참석한 것을 들었다. 또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외환보유액의 전용을 지시했으나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일방적으로 해임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의 예도 제시했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행정부와 중앙은행 간 갈등이 법정으로 비화된 상태다. 마르틴 레드라도 중앙은행 총재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의해 해임 조치됐다가 법원의 집행정지 명령으로 하루 만에 복권돼 오는 9월23일까지인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법원의 명령에 즉각 항소했다.

WSJ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주 유로화 가치가 너무 높다고 거듭 불평한 것도 중앙은행에 대한 간섭으로 비쳐진다고 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상을 자제하도록 사실상 간접적인 압력을 넣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의회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통화정책을 감사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원은 의회 소속의 회계감사원(GAO)이 FRB의 금리 결정을 감사할 수 있는 금융감독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은 FRB의 통화정책 결정 권한만 남기고 금융사 감독권과 금융소비자 보호권을 분리하는 금융감독개혁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와 주요 정책을 공조해오던 인도 중앙은행은 2007년 재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리를 인상했다. 이후 인플레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커져왔다. 영국중앙은행(BOE)이 1997년,일본은행(BOJ)은 1998년에야 독립성을 쟁취했을 정도로 중앙은행의 위상 지키기가 쉽지 않다고 WSJ는 상기시켰다.

WSJ는 일본의 경우 의회가 수시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짓밟으려 해왔다고 지적했다. 2001년 당시 집권당이던 자민당 의원들은 BOJ에 느슨한 통화정책을 의무화시키는 입법을 시도한 바 있다. 민주당 새 정권에서도 중앙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부의 기본 입장은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WSJ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우려가 없는 유일한 국가가 있다면 바로 중국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민은행이 중국 정부의 한 기관이어서 정치적인 통화정책 간섭이란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서기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