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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시무식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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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동짓날과 설날 임금과 신하가 한 자리에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벌였다. 요즘의 종무식과 시무식에 해당하지만 훨씬 다채로운 내용으로 이뤄졌다. 주요 정무보고와 함께 궁중의례,공연,술과 음식이 어우러진 일종의 잔치였다. 세종 15년(1433년) 설날 열린 회례연에선 신하들이 세종께 절과 술을 올린 다음 박연의 아악 정비 성과 보고,세종의 음악에 대한 포부와 계획 공표,음악과 춤 등이 이어졌다고 실록에 전한다.

    업무만 강조하지 않고 먹을거리에 공연까지 곁들여진 '원단(元旦)의 향연'쯤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큰 강당에 모여 단체장이나 대표의 준엄한 훈시를 들은 다음 박수를 치고 끝내는 의례적 시무식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떤 설문조사에선 가장 참가하고 싶지 않은 행사로 회식,워크숍과 함께 시무식이 꼽혔을 정도로 우리 시무식 문화는 형식화돼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시무식의 내용과 틀이 바뀌고 있다. 조선시대 회례연에는 못 미치겠지만 나름대로 의미와 재미가 가미된 이색 시무식으로 한 해를 여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무박 2일 30여㎞를 걷는 야간산행(현대스위스저축은행)에서부터 남산 해맞이 후 떡과 차 나눠주기(롯데백화점),나무에 소망달기(홈플러스),국립현충원 헌화 · 분향(LIG넥스원),부서 간 역할바꾸기 · 단체 줄넘기 댄스 등 게임(샘표식품)까지 다양하다. 저탄소 녹색성장에 동참하기 위해 자동차 열쇠를 반납하는 행사(전남 체신청)를 갖거나 음악회 뮤지컬 등의 공연(GS칼텍스,코오롱 등)으로 시무식을 대신하기도 한다. 임직원들 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고 기를 살려주려는 방향으로 시무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 갖는 의미는 늘 각별하다. 연초의 결심은 한 해의 시작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일종의 의식이다. 비록 그 다짐을 다 지키지 못한다 해도 무언가를 새 각오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무슨 일이든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 잘 시작한 일은 벌써 반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4일 시무식과 함께 올해 업무를 시작한다. 작은 다짐이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하고 힘차게 첫발을 내딛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온갖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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