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정선희씨는 올해도 점집을 예약했어요. 30대가 되면서부터는 새해마다 점집에 가요. 식품 대기업 과장이에요. 직장은 안정적이에요. 하지만 더 이상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순 없어요. 번듯한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가끔씩은 내가 '스뎅미스'(돈도 없는 데다 미모도 안 받쳐주는 노처녀)인 것 같아요. 재운,연애운,직장운 시시콜콜한 얘기에 복채가 5만원이에요.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밥 한 번 먹는 값이니 괜찮아요. 제일 궁금한 건 연애운이에요. 작년 점쟁이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남자가 생긴댔어요.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그럼 난 삼팔광땡이에요. 이동수도 있다고 했어요. 정말 다른 회사에서 오퍼가 많이 들어왔어요. 점쟁이가 틀린 말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올해는 무슨 말을 들을지 궁금해져요.

연말연시 골드미스의 속내를 '남녀탐구생활'식 내레이션으로 엮어보았다. 골드미스들은 2009년 한 해를 돌아보며 "특별한 일 없이 여느 해와 비슷하게 흘러갔다"고 입을 모은다. 새해를 맞이하는 골드미스의 다이어리는 어떨까. 다이어트,소개팅,재테크 전략 등 각종 계획으로 가득 채워진다.

# 나잇살 빼고 - 童顔은 내가 사는 이유



마케팅회사에 다니는 김지애씨(35)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해 직장생활 12년차다. 그는 "서른을 넘기니 먹는 족족 살이 찐다"며 "20대 후반일 때와 비교하면 6~7㎏나 차이 난다"고 말했다. 새해엔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열심히 할 계획이다.

작년 이맘 때 김씨는 서울 강남 파이낸스센터의 유명 피트니스클럽에서 200만원짜리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하지만 넉 달간 운동한 것은 달랑 5번.결국 위약금을 물고 회원권을 해약했다. 사내에서 '주카리'와 필라테스로 바지 허리치수 2인치를 줄인 후배는 '신(神)'으로 통한다. 골드미스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피부다. 최소영씨(39)는 "얼굴은 동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요즘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지쳐보이고 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피부과에서 탄력 · 주름 케어 시술인 '써마지 리프트'를 추천받았다. 최씨는 "60만원짜리 피부관리 10회 회원권을 끊었다"며 "친구들 사이엔 보톡스나 필러 같은 쁘띠 성형도 인기"라고 귀띔했다.

# 錢 쌓고- 카드값 꼭 줄이고 말테야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이세아씨(35)는 올해 재테크에 주력하기로 맘 먹었다. 우선 자잘한 씀씀이부터 줄일 생각이다. 매일 아침 마시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3300원),일주일에 3번은 타는 택시비(1만2000원)만 합쳐도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25만원에 달한다. 이씨는 "간간이 옷과 백을 지르며 쇼핑을 즐기다보니 월급을 버는 족족 어디로 새는지 모르겠다"며 "2007년 한창 경기 좋을 때 큰 맘 먹고 지른 펀드는 아직도 원금 회복이 안 돼 3000만원을 깎아먹었다"고 털어놨다.

이씨의 직장 동기는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매달 62만5000원씩 꼬박꼬박 불입한 장기주택마련저축은 7년 만기가 돼서 5000만원가량을 탔다. 여기에 적립식펀드,정기적금 등으로 모은 1억원으로 강북에 조그만 샌드위치 가게를 알아보는 중이다.

김정은씨(35)는 빚을 만드는 방법으로 재테크를 한다. 최근 전셋집을 15평짜리 원룸에서 24평 아파트로 옮겼다. 아예 매달 갚아야 하는 빚을 만들어 소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김씨는 "돈만 많으면 부동산이나 상가에 투자를 하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된다"고 말했다.

# 내공 늘리고- 외국어 · 자격증은 나의 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실무는 자신있지만 내공이 부족하다"는 점.20대의 젊은 열정만으론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수두룩하고,현업과 이론을 절충해보고 싶은 욕구도 느낀다. 굳이 미혼이 아니더라도 30대 여성 직장인들이 대학원,유학을 선택하거나 최소한 외국어 공부라도 하려는 이유다.

대기업 해외영업부에 근무하는 배진화씨(37)는 "30대 중후반을 달려가니 직장 내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고 고백한다. 배씨는 지난해 5개월간 일어학원을 다녔다. 매일 오전 6시30분에 한 시간 수업을 듣고 회사로 출근했다. 이미 야간 대학원(국제대학원)도 졸업했다. 주위에선 배씨를 '독한 년'이라고 부른다. 배씨는 올해는 일본어 고급 회화를 마스터하겠다는 계획이다. 취미생활도 필요하다. 배씨는 "평소 그림을 좋아하는데 전문강좌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멋진男 만나고-연애는 삶의 활력소

"결혼? 그게 목표가 될 순 없죠.5년,10년 사귀다가도 헤어지는 것은 한 순간인데….또 맘 먹는다고 남자가 뚝 떨어지나요?"

인터뷰에 응한 골드미스들 가운데 '결혼이 목표'라고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도란씨(33)는 "연말에 매주 두 번씩 파스타를 먹었지만(소개팅을 했다는 의미)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며 "맘 먹는다고 소울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신 멋진 남자가 혜성처럼 나타나 주길 바란다. 그에게 결혼은? "ASAP(as soon as possible,빠를 수록 좋다는 의미)이죠.언제라도 갈 수 있게 결혼자금 마련하고 다이어트,피부관리하고 있어요. "

# 압박감 벗고-난 팔방미인이 아니야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란 자신을 연극 무대에 선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하는 심리다. 자신은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주위 사람들은 자신을 쳐다보는 관객,즉 상상속의 청중이 된다. 통상 사춘기에 겪는 현상으로 각자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그러나 골드미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30대,결혼 적령기를 지난 미혼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팔방미인이 되려는 욕구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김혜남 전문의(정신분석)는 "30대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라며 "남의 시선에 목숨 걸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는 저서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갤리온)에서 "길을 모색하는 20대에는 잘못된 것은 수정하면 되지만 30대가 되면 선택한 것이 아주 틀리지 않는 한 최대한 치열하게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