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 했을까요. 겹겹이 문으로 막힌 심처.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 궁궐에서 답답한 생활을 잠시 잊는 재밋거리는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은 왕비나 궁녀들이 바깥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했지요.

이들이 읽은 소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창덕궁 낙선재에 89종 2000여책의 소설이 보관돼 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이 순화궁 김씨를 위해 창덕궁 안에 지은 500간이 넘는 건물이지요. 1928년 순종의 3년상이 끝난 후 계비 윤씨가 그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 많은 소설을 갖고 갔습니다. 윤비와 상궁,나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소설들인데,모두 한글 필사본입니다. 궁체의 단정한 서법으로 쓰여 예술적 가치가 높고,궁내에서 애독하던 중 · 장편이나 대작이 많아 국문학적 자료 가치도 크지요.

그 가운데 창작 소설이 1300여책입니다.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와 영웅의 일대기,전쟁 등 다양하지요. 이 소설들을 보관하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최근 누구나 쉽게 읽도록 시리즈를 기획해 첫 번째 책인 '조선 왕실의 소설 1'을 출간했습니다.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소설로 분량이 비교적 짧은 《낙성비룡(洛城飛龍)》 《문장풍류삼대록(文章風流三代錄)》 《징세비태록(懲世否泰錄)》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지요.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등 4명이 현대 어휘로 풀어 쓰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낙성비룡》은 장원급제해 입신 후에도 겸손하게 선비의 자세를 잃지 않는 인물을 그린 작품입니다. 《문장풍류삼대록》은 송나라 시인 소동파 집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동파의 조카 소원의 황당한 혼인담이 흥미롭습니다. 《징세비태록》은 청나라를 배경으로 충신과 간신의 대립과 전쟁,사랑 등을 묘사한 소설이지요. 이는 조선 후기 청나라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반영한 것으로 상당히 획기적입니다.

내년에는 바보 주인공이 위대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일대기를 다룬 《손천사영이록》,2011년에는 화씨 집안의 처첩 갈등을 다룬 가정소설 《화문록》도 나온다니 더욱 관심이 쏠립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