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수뇌부들 머리엔 온통 세종시와 4대강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개혁 과제들은 모조리 뒷전으로 밀려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정부 한 관계자)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세종시 문제 해법찾기와 4대강 사업 돌파에 올인하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과감하게 추진하려던 서비스 선진화,공기업 체질개선,교육 체계 개편,노사 선진화 등 각종 개혁과제들이 스톱되거나 후퇴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세종시와 4대강이 국가적으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될 아젠다로 등장하면서 마치 무서운 블랙홀처럼 변해가고 있다"며 "다른 모든 정책은 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및 공기업 개혁과 같은 과제들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정부가 과감히 밀어붙이지 않으면 쉽게 결론이 날 수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세종시와 4대강 때문에 정부가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이런 과제들을 모조리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 개혁의 핵심인 임금체계를 손질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공기업 선진화의 마지막 단계로 공기업의 방만한 임금구조를 손대려 했다. 업무 능력과 무관한 단일 호봉제와 과도하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을 줄이고 성과에 기반을 둔 연봉제를 도입한다는 것이 원안이다. 하지만 공기업 노조의 반발에다 세종시와 4대강 이슈에 묻혀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공기업 연봉제 가이드라인 발표도 무기 연기된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서비스 선진화도 마찬가지다. 병원주식회사 같은 영리 병원 도입이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 자격사 진입규제 완화 등은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줄기차게 주창했던 서비스 선진화의 주요 과제들이다. 내수 산업을 키우고 경기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인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서비스산업 개혁은 필수 과제다.

하지만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6년 넘도록 싸워오다 그나마 최소 공약수라도 찾기 위해 연구용역까지 맡겼으나 뒤늦게 청와대가 "서둘러서 될 문제가 아니다"고 하는 바람에 장기 추진 과제로 미뤄져버렸다. 연구용역을 맡았던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영리 병원 도입에 따른 장단점은 지난 6년간 수없이 논쟁을 벌여왔던 것"이라며 "이제와서 더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하자는 이유로 장기 과제로 미룬다는 것은 이 정부 임기 내에는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자격직종에 대한 진입규제를 완화해 관련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국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도 이익단체들의 반발에 부딪쳐 제대로 진척이 안 되고 있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현 정부가 내세웠던 '747' 공약(7% 성장,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경제강국)은 우리나라가 다시 고도성장의 열차에 올라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였고 이에 따라 서비스 선진화 등 어려운 개혁 과제들이 추진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취지는 잊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종시와 4대강 문제를 조속한 시일 안에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