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다카시 인근 30여년 된 난민 수용소. 몬순 시즌을 맞아 폭우가 쏟아졌다. 모모타 베굼과 그녀의 남편,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한 밤중이지만 이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됐다. 폭우로 불어난 물과 함께 집안으로 밀려드는 쓰레기와 인분 등 각종 오물들 때문이다. 조그마한 콘크리트 건물 내로 오물이 들어오면서 온 가족이 조그마한 낡은 침대 위로 몸을 피한다.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방글라데시로 몰려온 우르드어 사용 민족을 위해 마련된 난민 수용소의 삶은 이처럼 비참하다.

하지만 이들 난민의 삶에도 한줄기 서광이 비쳤다. 지난해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2만여 난민들의 삶을 주목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난민들의 생활조건이 개선될 수 있으리란 희망도 커졌다.

지난 6월 코펜하겐 컨센서스센터가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베굼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생활여건을 살펴보고 갔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짐꾼인 베굼의 남편은 한 달에 44달러를 벌며,저축은 단 한푼도 없다. 베굼은 자식들이 제대로만 배우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꾼 적도 있지만 실상 그녀의 첫딸은 연간 22달러에 달하는 교재구입과 교복 등 학비를 대지 못해 13살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에게 전기와 수도를 공급하고 있지만 위생상태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이질은 이곳에서 일상이며,베굼 가족은 아파도 2.9~4.3달러에 달하는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을 가지도 못한다.

방글라데시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선진국에선 이런 질문에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정책을 손쉽게 떠올리곤 한다. 앞으로 50~100년 내 해수면 상승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지구온난화를 줄이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베굼에게 가장 급박한 일은 앞으로 5~10년 뒤 해수면 상승이 아니다. 그의 소망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비하면 대단히 소박하다. "관계 · 배수시설이 잘 갖춰져서 가뭄이 없고,홍수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해요"라는게 그녀의 바람이다.

'인간 이하의 삶'이라는 열악한 환경에 사는 30억 인구에게 기본적인 위생과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데는 일년에 40억달러 정도가 든다. 반면 다음 세기까지 지구 온도상승을 2도 이내로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에는 2100년까지 매년 40조달러가 소요된다. 온실가스감축은 제3세계에 물부족이라는 부작용도 야기한다.

베굼에게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입장은 매우 단순하다. 자식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온난화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이 중요하지만,그렇다고 더욱 급박한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도 옳은 행동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베굼의 소망과 같은 당장의 긴박한 목소리들에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

정리=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이 글은 저서 '회의적 환경주의자'로 유명한 비외른 롬보르 코펜하겐 컨센서스센터 소장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방글라데시에서 바라본 지구 온난화'란 제목으로 실은 기고문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