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0시 북한 남포 서해함대사령부 8전대의 한 회의실-. 지난 10일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남조선 해군과 교전을 벌여 반파당한 채 돌아온 131t 경비정에 대한 분석회의가 열리고 있다. 분위기는 싸늘하다. 교전결과가 안 좋았던 탓이다. 분석장교들은 남조선 함포의 정확성과 교전양태 변화에 대해 집중 토론을 벌인다. 3㎞ 가량 떨어진 공화국 경비정을 반파시킬 정도로 정확히 타격한 남조선 함포의 성능에 다들 마른 침을 삼킨다. 뒤이어 남조선 측의 교전 변화에 대한 의견개진이 진행된다. "가까이 붙지 않고 멀리서 쏘았습니다. "(제1병사) "충돌식 밀어내기를 먼저 했던 옛날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2병사) 새로운 교전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의는 두시간 만에 끝난다.

제3차 서해교전 이후 북한 함대사령부에선 이런 회의가 열렸음 직하다. 1999년과 2002년 연평해전 때 보지 못했던 우리 측의 속전속결에 크게 당황하는 북한 측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번 교전에서 적용한 대응수칙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휘관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등 5단계 수칙을 지키도록 했다. 이번에 적용한 경고방송→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 수칙과 천양지차다. 3단계 채택은 시위기동과 차단기동으로 사이드스텝을 밟고 있다가 선제포격을 당한 2002년 연평해전 피해분석에 따른 것이다.

6명의 전사자를 낸 연평해전 직후 군 내부에서는 전투지휘관에게 재량권을 대폭 허용하는 교전수칙을 새로 작성해야 한다는 건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잇따른 대북유화 정책으로 인해 교전수칙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개정됐다. 일각에서는 잦은 교전이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5차례의 경고방송에도 아랑곳없이 남하하는 북한함정을 제지하지 않는 국가는 국가라고 할 수 없다. 2002년과 2009년의 서해.변한 것은 단 하나 교전수칙뿐이지만 해군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로맨틱한 '밀어내기'로는 선제공격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지만 붙으면 무조건 이겨야지요. " 국방부 관계자의 대답은 단순했다.

고기완 사회부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