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씨(41)는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내집 마련 꿈을 다시 꾸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의 세곡과 우면지구를 노렸던 박씨는 청약저축 불입액이 940만원으로 일반공급 최우선순위(불입액 1200만원)에 못 미쳐 지난주 마감된 1차 보금자리주택엔 신청하지 못했다. 그는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회사까지 출퇴근할 수 있는 곳에서 값싼 보금자리주택이 계속 공급될 것이란 소식에 실망보다 기대가 더 크다고 얘기했다.

보금자리주택이 주택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무주택 서민층은 물론이고 박씨처럼 저축으로 자산을 불려온 30,40대 직장인 무주택자,신혼부부 등을 보금자리주택 대기수요자로 묶어두는 효과를 벌써부터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2년된 대기업 회사원 최모씨(31 · 서울 행당동)는 "보금자리주택 발표를 보고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주택청약종합저축에 최근 가입했다"고 말했다.


'입지+가격' 경쟁력이 흥행 성공 요인

지난달 7~29일 진행된 하남 미사 등 4개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사전예약에서 전체 아파트 1만4295채 모집에 5만8914명이 신청,평균 4대 1의 경쟁률로 1순위에서 마감됐다. 생애최초 신혼부부 등 다양한 특별공급을 도입하고 청약저축 1순위자를 불입금액 및 기간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누는 등 엄격히 제한된 자격요건을 적용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경쟁률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성공 요인으로 뛰어난 입지 여건과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서울 강남권과,1기 신도시보다 위치가 좋은 수도권 요지에서 아파트가 대규모로 분양된 데다 가격도 인근의 50~70%에 불과,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흡입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미영 스피드뱅크 팀장은 "이번 보금자리주택 성공으로 공공주택 경쟁력이 민간주택에 비해 떨어진다는 인식이 거의 해소된 점은 향후 주택시장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상반기 나올 2차 지구 입지 여건은 1차 때보다 더 좋아 수요자 관심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 · 수도권 주택공급 불안 해소

주택시장 최대 성수기인 지난 10월 한 달간 서울 · 수도권에서 새로 분양된 아파트는 3만4400채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8% 늘어났다. 이 같은 증가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달 보금자리주택이 서울 · 수도권 분양물량에서 차지한 비율은 41.5%에 달했다. 특히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 지구에서 분양된 2000여채의 아파트는 지난달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거의 유일한 신규 물량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민간 분양물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이 주택공급 부족을 상당부분 해소시켜 줄 것"으로 진단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주택 실수요자들의 시선이 보금자리주택을 중심으로 한 신규 분양시장으로 쏠리면서 기존 주택거래가 급감한 가운데 서울 재건축 아파트가 5주 연속 내렸고 지난주 수도권 집값도 7개월 만에 하락했다.

◆장기 주택시장 안정 효과 클 듯

주택개발업체인 피데스 김승배 사장은 "보금자리주택이 사전예약을 통해 주택 실수요자를 미리 묶어버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을 받아 기존 주택을 구입하려는 잠재 수요자들이 공공주택을 기다리도록 잡아두는 기능도 보금자리주택이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공 및 민영 주택에 모두 청약할 수 있어'만능통장'으로 불리는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출시 5개월 만인 지난 9월 말 현재 가입자수가 825만여명을 넘어선 것도 보금자리주택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보금자리주택이 수요자의 기존 주택시장 진입 유보 및 분양가 끌어내리기 등의 효과를 통해 집값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미영 팀장은 "보금자리주택의 저렴한 분양가격이 민영주택 분양가를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되고 결국은 기존 주택시장도 안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