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았으랴. 1 대 5로 지고 있던 KIA 타이거즈가 SK 와이번스를 누르고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줄. 그것도 9회 말 역전 홈런으로. 게다가 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나지완이. 이러니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고 승부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고 할 밖에.

한국시리즈 최종전만 그러했으랴. SK가 두산 베어스에게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도, 그토록 어렵사리 나간 SK가 정규리그 우승자인 KIA에 또다시 2연패 뒤 2승을 거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뒤 7차전까지 간 것도 모두 예측을 불허한 드라마였다.

이긴 팀과 진 팀 모두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대서사극의 배우는 양팀 선수들이었지만 연출자는 KIA 조범현 감독(49)과 SK 김성근 감독(67)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 조 감독의 고교 시절 감독이 김 감독이었고, 프로야구계에서도 여러 차례 제자와 스승으로 만났다. 뿐만 아니라 조 감독이 물러난 SK 와이번스를 이어받은 이가 바로 김 감독이었다.

오랫동안 사제지간이었던 만큼 두 사람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치밀한 데이터와 상대 전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경기를 꾸려가는 게 그것이다. 실제 두 사람은 종종 뭔가 들여다봤다. 들춰보는 게 김 감독은 작은 수첩,조 감독은 A4용지였다는 것만 달랐을 뿐.

김 감독은 야신(野神,야구의 신)이란 별명처럼 이번에도 경기 전에 한 말이 거의 다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역시 데이터 분석과 선수에 대한 꼼꼼한 관찰의 결과다. 그런 그도 두산과의 3 · 4차전에선 데이터 대신 감에 의존했다고 한다. 선수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으면 데이터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선수들의 자신감을 키우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지난해 KIA 감독에 취임한 뒤 "KIA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패배의식을 걷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한국시리즈 때도 "못 치고 못 던지고 실수해도 이긴다. 해온 대로 한다. 반드시 우승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김 감독과 조 감독은 둘 다 탄탄대로가 아닌 이리저리 휘어지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온 이들이다. 데이터를 중시하되 감을 활용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선수를 믿되 승부의 책임은 지도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리더십 또한 그같은 인생 경험에서 나왔을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