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올 연말까지 약 1조원의 선박펀드 자금을 조기 투입하기로 했다. 자금난에 빠진 해운회사들에 세일 앤드 리스 백(sale & lease-back · 매입후 임차) 방식으로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지원책이 속도를 내면서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운임 하락과 물동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어온 해운업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마침 국내 전체 항만의 컨테이너 처리 물량도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박펀드 공격투자·컨 물량 반등…해운경기 바닥치나
◆속도 내는 선박펀드

진행이 더뎠던 선박펀드들은 최근 선박 매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은행이 조성한 선박펀드는 이달 말 대한해운의 18만t급 벌크선 1척을 약 700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다음 달까지 대한해운의 동급 선박 2척을 추가로 산다. 올해 안에 동아탱커,STX팬오션,현대상선 등의 선박 총 7~15척을 매입할 예정이다.

민간 선박펀드가 한 해 많아야 5~6척가량의 배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빠른 속도다. 산은 관계자는 "이미 2조원의 자금 조성은 끝났고,올해 안에 약 5000억원 정도를 쓸 예정"이라며 "첫 선박 매입 이후부터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선박 17척을 산 캠코는 연내에 10척을 추가로 매입한다. 투입하는 자금 규모는 약 5000억원.보다 다양한 해운회사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새로운 선박펀드 활성화 방안도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컨테이너 물량 늘어나고 운임도 상승

경기 회복세를 타고 컨테이너 물량도 늘어나고 있다. 국토해양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국내 컨테이너 항만은 총 141만592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의 물량을 처리했다. 작년 9월(150만4112TEU)에 비해서는 적지만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2월(107만9649)에 비해서는 31% 늘었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한진해운도 지난 2월 17만TEU를 처리해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9월에는 30만TEU를 날랐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2분기에 바닥을 찍었던 물량이 서서히 늘어나 예년 수준을 회복해 가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컨테이너선의 운임수준을 나타내는 HR종합용선지수는 330포인트를 오가며 아직 바닥 수준을 못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 등 컨테이너선사들이 운임을 인상하고 있어 서서히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은 최근 유럽~아시아 노선 화물운임을 75달러 올렸고 지난 8월에는 아시아~미주 노선의 운임도 500달러 올렸다.

현대상선도 10월에 유럽~아시아 노선의 운임을 300달러 인상했다. 화물 등을 주로 나르는 벌크선의 운임을 나타내는 BDI(발틱운임지수)도 최근 2개월간 2500포인트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 22일 3001포인트로 올랐다.

더딘 구조조정 · 공급 과잉이 걸림돌

하지만 회복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부실 해운사의 구조조정이 더디고 새로운 선박이 갈수록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지난 4월 채권단으로부터 퇴출 통지를 받은 회사는 4곳이었으나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퇴출 당한 해운사는 파크로드와 브라이트해운 등 2곳뿐이다. 선주협회 등록 해운사 수는 168개로 올해 초 177개에서 9개 줄었지만 2004년(73개)에 비해서는 여전히 두 배 이상 많다. 내년까지 180만TEU의 새로운 컨테이너선이 쏟아지는 것도 문제다. 인도 연기나 폐선 등의 조치가 없을 경우 상승세가 다시 꺾일 수 있다.

부실 해운회사가 파산하지 않고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등을 통해 '식물기업' 상태로 연명하면서 다른 회사로 부실을 전이시키는 악순환도 해운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법정관리 중인 회사는 삼선로직스,대우로지스틱스,TPC코리아,세림오션쉬핑 등 4개다. TPC코리아는 삼선로직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돈을 받지 못해 같이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세계 경기 회복세가 생각보다 더뎌 해운업 침체기가 길어질 수 있다"며 "부실 해운사들의 구조조정이 더딘데다 내년과 내후년에 새로운 선박이 쏟아지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