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5주년 '韓流 이젠 경제다'] (3) 삼성ㆍLG가 만들면 '세계표준'…소니ㆍ노키아도 따라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3) 한국 기업을 벤치마킹하라
#전쟁 복구사업이 한창인 이라크와 전력난을 겪고 있는 쿠바 전력 기술자 150여명이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이 회사 엔진사업부가 2005년 12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인 '힘센스쿨'에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해외 기술자 1000여명이 이곳에서 발전설비 기술을 익혔다. 쿠바에서 온 페드로소 세군도씨(37)는 "10페소(1만원)짜리 지폐에 현대중공업이 만드는 발전설비 도안이 들어갈 정도로 쿠바에서 현대는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소니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TV시장에서 지존,부동의 황제처럼 군림해 왔다. 하지만 지난 1년여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자갈길을 지나면서 삼성전자에 이어 LG전자에도 추월당하고 말았다. 소니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선택한 전략은 '한국식(式)'이다. LG전자가 테두리 두께를 줄여 세련되면서도 화면이 더 크게 보이는 '보더리스(Borderless) TV'를 내놓자 소니도 다음 달부터 화면 테두리를 거의 없앤 초박형 TV를 출시하기로 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딛고 질주하고 있는 한국식 마케팅과 공격경영 DNA는 글로벌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만들면 세계표준이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휴대폰 · LED TV,'경제 한류' 이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고해상도 AMOLED(아몰레드 ·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을 장착,화질을 크게 개선한 제품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통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보고 듣는 종합 컨버전스(융합)기기로 진화한 제품이다. 지난 6월 선보인 글로벌 전략 모델 '제트'는 기존 제품보다 4배 이상 선명한 아몰레드 화면을 탑재,'보는 휴대폰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트렌드를 뒤따라 세계 1위 휴대폰 업체 노키아를 비롯 소니에릭슨 등 글로벌 경쟁사들도 아몰레드폰 생산에 나섰다.
휴대폰 업계의 화두가 된 '터치스크린폰'도 국내 기업의 작품이다. LG전자는 2007년 3월 명품 휴대폰 '프라다폰'을 세계 최초로 전면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개발했다. 이후 애플의 아이폰 등 다양한 터치폰이 나오며 새로운 물결로 자리잡았다.
스팀세탁기도 한국 전자업체가 원조로 꼽힌다. LG전자는 2006년 초 세계 최초로 듀얼(2중) 스팀 분사 기능을 적용해 스팀세탁기를 개발했다. 당시 북미 지역에서 LG전자 스팀세탁기가 세탁력과 스팀 기능으로 큰 인기를 끌자 이듬해인 2007년에는 월풀이,지난해에는 GE 등이 세탁기에 스팀 분사 기능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북미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스팀' 기능을 넣은 세탁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대까지 치솟았다.
TV는 대표적 '경제 한류' 제품이다. 지난 3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40 · 46 · 55인치대의 'LED(발광다이오드) TV' 제품군을 글로벌 시장에 투입했다. 소니가 기술을 먼저 개발해놓고도 머뭇거리는 사이 삼성은 LED를 새로운 TV 카테고리로 만들어냈다.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자 소니 필립스 파나소닉 등도 올 연말부터 본격 판매에 나설 태세다.
한국 기업이 만든 기준이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손잡고 개발한 모바일 디지털TV 기술은 지난 16일 미국 표준으로 최종 채택됐다. 차세대 모바일 TV의 주도권을 한국 기업들이 쥐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휴대폰에 쓰이는 20핀 충전단자 규격은 지난 주말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의에서 국제표준 초안으로 선정됐다.
◆"한국 기업의 시스템과 마케팅을 배워라"
단순히 제품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공장 시스템도 학습 대상이 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파주 공장은 한국을 찾는 주요 정부 관계자나 MBA(경영학 석사) 과정 학생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자리잡았다. 최신설비뿐 아니라 세계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운영 노하우는 LCD업계의 교과서로 통한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의 스탠퍼드대,코넬대,미시간대,워싱턴대,남가주주립대,시라큐스대 등 수많은 MBA 학생들이 회사를 둘러보고 갔다"고 말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축적한 정유기술을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SK에너지는 베트남 최초의 정유공장인 빈손 정유공장 운영을 위해 전문 기술인력 103명을 5년간 베트남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일부 공정에 대한 기술 전수 수준을 넘어 국내 최초로 다른 나라의 정유공장 운전과 조직운영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기술 한류'로 손꼽을 만하다. 김영태 SK에너지 부사장은 "지난 47년간 쌓아온 수준 높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GS칼텍스는 2003년부터 오만 소하르 정유공장에 시설운영 및 정비업무를 지원해 왔다.
세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국내 유 · 무선통신을 엿보러 오는 행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최대 이동통신사인 비보의 파울로 테이세이라 총괄 수석부사장 등 주요 임원들은 지난달 LG텔레콤 본사를 방문했다.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무선인터넷 서비스인 '오즈'의 개발 과정과 마케팅 전략,서비스,단말기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SK텔레콤이 작년 10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모바일 체험관 '티움(T.um)'도 MBA 학생들로 북적인다.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MIT 경영대학원 등의 학생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