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영웅만들기에 인색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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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글날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다. 세종대왕이야말로 위대한 지도자였던 만큼 동상건립에 대해 여야나 보혁(保革)을 막론하고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툭하면 보혁 간에 날선 공방이 오가기 일쑤인 요즈음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식이나 국가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해 상징화되고 있는 인물은 왜 거의 왕조시대의 인물로 채워지고 있는가. 이번의 세종대왕 동상이 그렇고 또 5만원권 지폐에 들어있는 신사임당 도안도 그렇다. 물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나 현모양처로서 모범적 삶을 살았던 신사임당에 대해 그 인물됨을 누가 흠잡을 수 있으랴.
문제는 우리가 왕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 제1조에도 나와 있다시피 '공화국'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공화국을 뜻하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는 말은 로마의 키케로로부터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 이래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함의를 갖는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천신만고 끝에 주권재민의 공화국을 세운 지 어언 6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그 공화국을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물론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인물은 있으나 유난히도 영웅 만들기에 인색한 한국사회가 공(功)보다는 과(過)를 보는 데 전념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독립운동가로 살았고,혼란했던 해방 공간에서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유엔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독재의 흠결로 인해 그의 동상은 사라졌고 그 후 우리에겐 망각의 인물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이른바 '캔두(can do)'정신으로 압축근대화를 이끌었지만,독재를 했다는 이유로 동상은커녕 기념관조차 없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우리 공동체가 건국 이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무색케 할 정도로 발전한 것이 분명하다면,이 발전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며 현재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앨범을 보더라도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수령(樹齡)이 500년이나 된 노송을 보며 감탄하는 것은 현재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생명의 숨결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공동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조국(祖國)'이라고 부를 때,선조의 나라임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로마인들이 조국의 의미로 사용한 '파트리아(patria)'라는 말의 어원을 보아도 '아버지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것은 한 나라가 유지되고 번영하는 데 있어 현재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 뿌리와의 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자유와 평등,인권이 비교적 만개하고 보수와 진보,좌파와 우파가 서로 번갈아가며 국가권력을 차지할 만큼 공화주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사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번영과 공화주의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인정하기를 꺼린다면,지성의 비겁함일 터이다. 건국과 근대화의 열매는 따먹으면서 정작 그 결실을 가능케 한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뿌리가 꺾인 채 화병에 놓인 꽃을 보는 참담함과 무엇이 다르랴.생각하는 국민이라면 한반도에서 진정한 공화국이 처음으로 세워지고 근대화가 이룩된 것을 축복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건국과 근대화의 주역을 기리는 방법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식이나 국가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해 상징화되고 있는 인물은 왜 거의 왕조시대의 인물로 채워지고 있는가. 이번의 세종대왕 동상이 그렇고 또 5만원권 지폐에 들어있는 신사임당 도안도 그렇다. 물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나 현모양처로서 모범적 삶을 살았던 신사임당에 대해 그 인물됨을 누가 흠잡을 수 있으랴.
문제는 우리가 왕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 제1조에도 나와 있다시피 '공화국'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공화국을 뜻하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는 말은 로마의 키케로로부터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 이래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함의를 갖는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천신만고 끝에 주권재민의 공화국을 세운 지 어언 6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그 공화국을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물론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인물은 있으나 유난히도 영웅 만들기에 인색한 한국사회가 공(功)보다는 과(過)를 보는 데 전념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독립운동가로 살았고,혼란했던 해방 공간에서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유엔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독재의 흠결로 인해 그의 동상은 사라졌고 그 후 우리에겐 망각의 인물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도 그렇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이른바 '캔두(can do)'정신으로 압축근대화를 이끌었지만,독재를 했다는 이유로 동상은커녕 기념관조차 없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우리 공동체가 건국 이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무색케 할 정도로 발전한 것이 분명하다면,이 발전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며 현재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앨범을 보더라도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수령(樹齡)이 500년이나 된 노송을 보며 감탄하는 것은 현재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생명의 숨결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공동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조국(祖國)'이라고 부를 때,선조의 나라임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로마인들이 조국의 의미로 사용한 '파트리아(patria)'라는 말의 어원을 보아도 '아버지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것은 한 나라가 유지되고 번영하는 데 있어 현재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 뿌리와의 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자유와 평등,인권이 비교적 만개하고 보수와 진보,좌파와 우파가 서로 번갈아가며 국가권력을 차지할 만큼 공화주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사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번영과 공화주의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인정하기를 꺼린다면,지성의 비겁함일 터이다. 건국과 근대화의 열매는 따먹으면서 정작 그 결실을 가능케 한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뿌리가 꺾인 채 화병에 놓인 꽃을 보는 참담함과 무엇이 다르랴.생각하는 국민이라면 한반도에서 진정한 공화국이 처음으로 세워지고 근대화가 이룩된 것을 축복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건국과 근대화의 주역을 기리는 방법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