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당일 경기도 장흥의 아버님 산소에 다녀왔다. 공원묘지가 몰린 지역이라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10년 전부터 아침 일찍 한가하게 다녀왔는데,금년엔 웬일인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성묘객이 몰려 복잡했다. 짧은 연휴 때문에 여행을 못가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의 행동패턴이 바뀐 건지 궁금했다.

다른 곳도 그런지 모르지만 아버님 산소는 두더지들이 사방을 파헤치는 통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태양열 판을 이용한 초음파 발생 장치를 설치한 뒤 잠시 뜸하더니 다시 설치는 듯해 이번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가족들과 의논했다. 두더지는 영리해 일반 쥐약은 먹지 않지만 지렁이를 좋아해 모양과 냄새 모두 지렁이 같은 미끼를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정보에 관심이 간다. 제아무리 영리해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란 유혹에 빠지지 않기는 어렵겠지 싶은 까닭이다.

올해 프로야구는 역대 최대 관중을 끌어모을 만큼 대풍작이라고 한다. 시즌 개막 전 WBC에 참가한 한국팀의 활약이 불을 댕긴 데 이어 막판까지 이어진 각축전으로 흥미를 더한 것도 한몫 했다는 보도다. 야구의 투수 의존도처럼 특정 포지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기는 없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유명 감독의 독백은 야구의 특성을 잘 표현했지 싶다.

야구나 축구 경기 중계방송의 경우 해설자에 따라 중계방송을 듣거나 보는 맛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선수 기용과 작전에 기록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야구시합 해설에서 감독의 선수 교체나 작전 지시 직전,해설자의 예상이 맞아떨어질 때의 놀랍고 묘한 기분은 다른 데서 찾기 어렵다. 해설자의 야구 격언 중 뇌리에 깊게 박혀 있는 것은 "투수가 타자와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벌일 때 회심의 위닝샷(winning shot)을 던지다 실투해 조금만 옆으로 던지면 타자에게 크게 얻어맞는다"이다. 강점 바로 옆에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기업들이 크게 성공했다 쓰러지는데,이는 과거 성공으로 이끈 법칙에 집착하다 바로 그 성공 요인이 변화한 환경 아래 오히려 독으로 작용해서 그런 수가 많아 보인다. 북미은행 가운데 유전(油田)사업 분석전문가를 경쟁 은행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두고 있던 은행은 전문가집단에 대한 자신감으로 원유 관련 익스포저(exposure · 위험노출 자산)를 지나치게 늘렸다.

그런 사업구조의 결과 원유값이 대폭 오를 때 크게 재미를 보던 그곳은 원유값이 폭락하면서 은행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를 겪었다. 특정 사업부문이나 상품이 잘 나갈 때 이에 대한 편중을 자제하면서 전체적인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전략을 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본능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금융위기를 반복한다면 과연 인간과 두더지 같은 동물이 다른 게 무엇일지 자문해보게 된다.

김선구 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sunkoo200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