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1일 북핵 해법과 관련,'그랜드 바겐(Grand Bargain)'방식을 제시했다. 북핵 폐기와 동시에 북한에 체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자는'일괄타결'을 의미한다. 단계적 절차를 밟아 핵폐기에 이른다는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에서 벗어나 일거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논의의 시작단계에서부터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한다는 최종목표를 상정함으로써 '비가역적 핵포기'를 원천 확보한다는 취지다.

◆왜 그랜드 바겐인가?

'그랜드 바겐'은 이 대통령이 기존에 천명했던 '포괄적 패키지'해법과 큰 틀에서 맥을 같이하지만 내용이나 방법론적으로 한 단계 구체화한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우선 기존 포괄적 패키지는 선(先) 핵폐기와 경제적 지원에 무게중심을 뒀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북핵 폐기가 이뤄지고 나서 국제사회가 포괄적인 경제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단계적인 해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8 · 15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등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국제지원을 본격화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랜드 바겐'에는 북한의 발길을 대화의 장으로 돌리게 하는 '유인책'이 더 있다. 우선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핵심 부분의 폐기와 '동시에' 경제적 지원을 하자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 안전보장까지 약속했다. 모두 북한의 우려와 불안을 달랠 수 있는 방안이다. '포괄적 패키지'라는 단어가 보상의 의미를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는 판단 아래 '그랜드 바겐'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을 제시한 것은 타협과 파행,진전과 후퇴를 반복해 온 과거 북핵 협상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해석된다.

청와대 참모는 "지금까지 핵협상에서 북한은 '살라미 전법(흥정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야금야금 실속을 챙기는 전법)'을 구사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통합된 접근법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일정 부분 이행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협상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북한이 근본적 핵폐기에 나설 경우 한번에 의미 있는 반대급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완전한 핵폐기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단계별 처방과 보상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핵 폐기와 관련,"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와 같은 곁가지만 가지고 얘기하지 말고 플루토늄 같은 핵심 파트를 먼저 없애거나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구성장치와 부속품을 없애는 등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만찮은 과제 남아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은 한 · 미 간에 어느 정도 조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 · 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구상을 제안했고,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그랜드 바겐'용어를 써가며 공감을 표한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23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잇달아 회담을 갖고 '그랜드 바겐'방식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구체적 사안으로 들어가 보면 난제들이 적지 않다. 북한이 확실한 핵 폐기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하는지를 놓고 기싸움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북한이 과연 핵무기까지 완전히 드러내 놓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있다. 북한이 내놓으려는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남측과 국제사회가 떠안는 부담도 더 커진다. 자연히 각국 간의 분담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뉴욕=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란='대타협' 또는 '큰 거래'를 뜻하는 용어.관련국들이 모든 이슈를 한꺼번에 일괄 타결하는 것으로 포괄적 패키지와 동일한 개념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 마이클 오핸론과 조지워싱턴대 교수인 마이크 모치주키 교수는 2003년 '그랜드 바겐'이란 책에서 북핵 동결 즉시 북한에 화력발전소 건립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