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힘은 막강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비밀 혹은 시크릿(secret)이란 말만 들어도 바짝 다가선다. 먹으면 죽는다는데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와 아담의 행동은 비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얼마나 원초적이고 말리기 힘든 것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비밀을 지키고 간직하는 건 더 어려워 보인다. 오죽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얘기가 생겨났을까. 어쨌거나 여성을 폄하하는데 가장 오래 그리고 자주 쓰여온 것이 '유혹에 약하다'와 '입이 가볍다'이다. 선악과를 먹은 걸로 치면 아담과 같은데도 죄는 늘 이브의 몫이다.

자나깨나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까. 영국의 한 와인전문업체가 18~65세 여성 3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여성들의 경우 비밀을 누설하는데 47시간15분밖에 안 걸린다는 보도가 나왔다. 남의 비밀을 전하고 나면 미안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참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통은 술김에 털어놓는다니 '입술과 술잔 사이엔 악마의 손이 넘나든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40% 이상이 '누구 얘기인줄 모르면 되지 않느냐'고 답했다지만 일단 흘러간 다음엔 비밀로 남아 있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3.6명,세계적으로도 6.6명만 거치면 아는 사이라는 마당이다.

안그래도 비밀은 없다고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거니와 '하늘이 알고,땅이 알고,그대가 알고,내가 아는데(天知地知子知我知),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라는 말도 있다. 중국의 후한(後漢) 시절 군수였던 양진(楊震)에게 부하직원 한 사람이 금품을 주려고 하면서 '지금은 밤이 깊어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자 했다는 말이다.

흔히 여성과 달리 남성은 '굳이 말할 필요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후배나 동료가 술김에 실토한 사생활이나 집안 사정,실연담 등을 떠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이 무겁다는 평판이 신용으로 직결되고 그래야 고급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있다.

그러나 살아본 사람은 다 안다. 비밀을 흘리는데 남녀가 딱히 다르지 않다는 걸.비밀은 털어놓는 순간 비밀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탈무드의 조언을 따르는 편이 나을 듯싶다. '사람의 몸에 있는 여섯 부분 중 셋은 인간의 힘으로 지배할 수 있고 셋은 없다. 전자는 눈 귀 코,후자는 입 손 발이다. 당신의 혀에 나는 모른다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