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하토야마 日차기 총리의 세계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미국식 글로벌화에 강한 거부감, 역내 경제통합 논의 속도 붙을듯
일본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무려 300석이상을 확보하면서 단숨에 정권을 장악한 것은 가히 선거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자민당 창당 이래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1955년체제를 무너뜨리면서 일본에 진정한 정권교체의 시대를 열고 보수적 일본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까닭이다.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인물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다. 다음 주 차기 총리로 정식 선출될 예정인 그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홈페이지(www.hatoyama.gr.jp)에 올려놓은 '나의 정치철학'이란 글과 그 동안의 발언 등을 살펴보면 대략적인 짐작은 가능하다.
가장 주목해 볼 부분은 '탈미입아(脫美入亞)'를 강조한 점이다.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한 마디에는 그의 세계관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홈페이지의 글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일본이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왔던 국가전략은 탈아입구(脫亞入歐)로 요약된다. 후진사회인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고 그 체제로의 편입을 이루자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1885년 주창한 이래 오랜 숙원이었다.
하토야마가 방향을 180도 선회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미국식 글로벌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는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는 미국이 추구해온 시장원리주의,금융자본주의의 파탄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 본다. 세계가 미국적 자유시장경제를 이상적인 것으로 믿고 아메리칸 스탠더드(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제론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각국의 전통산업을 파괴하는 등 부작용이 더 컸고 사람을 인건비 개념으로만 파악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유지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한다.
둘째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그는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일극 지배 시대가 끝나고 다극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본다.
다만 아직 미국을 대신할 패권국가나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가 눈에 띄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20~30년 정도는 미국이 군사적 · 경제적으로 최고 실력을 유지하겠지만 영향력 약화는 피하기 힘든 만큼 더이상 미국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눈을 돌리는 곳이 바로 동아시아다. 동아시아 지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전체의 4분의 1에 이를 만큼 경제적 역량이 향상되고 상호의존 관계도 심화되는 추세여서 지역경제권 형성을 위한 기반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경제사회협력 및 안전보장 제도가 확립되도록 부단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향후 반세기 동안의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금융위기 이후의 대응과 관련해서도 "국제통화기금(IMF) · 세계은행 체제를 보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시아 공동통화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생각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벌써 미국 언론들은 그를 반미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고 미 행정부 또한 경계의 분위기가 완연하다. 앞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경제통합 논의가 보다 활성화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두 차례에 걸친 외환위기의 희생양이 된 동아시아국가들은 그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능동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키우려는 중국 또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경제통합 논의에 임하는 세부적 전략을 하루 빨리 구체적으로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일본의 신정권 등장은 우리에게 큰 과제를 떠안긴 셈이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인물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다. 다음 주 차기 총리로 정식 선출될 예정인 그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홈페이지(www.hatoyama.gr.jp)에 올려놓은 '나의 정치철학'이란 글과 그 동안의 발언 등을 살펴보면 대략적인 짐작은 가능하다.
가장 주목해 볼 부분은 '탈미입아(脫美入亞)'를 강조한 점이다.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한 마디에는 그의 세계관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홈페이지의 글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일본이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왔던 국가전략은 탈아입구(脫亞入歐)로 요약된다. 후진사회인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고 그 체제로의 편입을 이루자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1885년 주창한 이래 오랜 숙원이었다.
하토야마가 방향을 180도 선회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미국식 글로벌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는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는 미국이 추구해온 시장원리주의,금융자본주의의 파탄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 본다. 세계가 미국적 자유시장경제를 이상적인 것으로 믿고 아메리칸 스탠더드(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제론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각국의 전통산업을 파괴하는 등 부작용이 더 컸고 사람을 인건비 개념으로만 파악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유지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한다.
둘째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그는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일극 지배 시대가 끝나고 다극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본다.
다만 아직 미국을 대신할 패권국가나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가 눈에 띄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20~30년 정도는 미국이 군사적 · 경제적으로 최고 실력을 유지하겠지만 영향력 약화는 피하기 힘든 만큼 더이상 미국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눈을 돌리는 곳이 바로 동아시아다. 동아시아 지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전체의 4분의 1에 이를 만큼 경제적 역량이 향상되고 상호의존 관계도 심화되는 추세여서 지역경제권 형성을 위한 기반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경제사회협력 및 안전보장 제도가 확립되도록 부단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향후 반세기 동안의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금융위기 이후의 대응과 관련해서도 "국제통화기금(IMF) · 세계은행 체제를 보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시아 공동통화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생각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벌써 미국 언론들은 그를 반미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고 미 행정부 또한 경계의 분위기가 완연하다. 앞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경제통합 논의가 보다 활성화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두 차례에 걸친 외환위기의 희생양이 된 동아시아국가들은 그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능동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키우려는 중국 또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경제통합 논의에 임하는 세부적 전략을 하루 빨리 구체적으로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일본의 신정권 등장은 우리에게 큰 과제를 떠안긴 셈이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