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전이었던 작년 상반기와 지금의 베스트셀러 명단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명상이라든지,탐사보도 내용을 담은 서적 등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책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지요. 독일은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는 달리 대규모 구조조정이 없어서인지,중산층 가정은 금융위기의 타격을 거의 받지 않은 편이에요. 금융위기의 '무풍지대'라고나 할까…"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중심가인 자일 거리에 있는 대형 서점 후겐두벨에서 일하는 클라우스 홀슈씨는 최근 독일 서점가와 독일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프랑크푸르트 거리에서 만난 다른 일반인들의 생각도 홀슈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년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유학 중인 윤종욱씨(36)는 "소수민족을 위한 시민단체에 근무하는 대학 친구가 후원금이 작년 상반기 대비 절반가량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던 것 말고는 유학 초년 때하고 크게 달라진 걸 모르겠다"며 "최근 독일의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는 걸로 나타나 사회 분위기는 오히려 작년 하반기에 비해 밝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독일 내부에서는 자국의 경제 상황과 관련,"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다. 독일 통계청이 지난 7월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분기 경제성장률은 0.3%를 기록,금융위기 이후 지속돼 온 마이너스 성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지출이 전분기에 비해 0.4% 늘어나면서 민간소비가 0.7%,건설투자가 1.4% 증가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경제회생의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3분기 전망은 더 밝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독일이 3분기에 0.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유니크레디트의 알렉산더 코흐 연구원은 "아직도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독일의 수출도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탈 것"이라면서 "특히 독일의 주요 교역 파트너인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국)의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금융업계의 실적도 지난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지난 7월에 발표된 독일 최대 민간은행 도이치뱅크의 실적은 시장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이치뱅크의 2분기 순이익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8% 급증한 10억9000만유로(15억5000만달러)로 블룸버그통신이 발표 직전에 예상했던 9억4400만유로의 예상치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요셉 애커만 도이치뱅크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 자본시장이 2분기 들어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IB부문의 순이익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게 선전의 배경"이라며 "하반기 실적은 글로벌 경제 회복 추세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독일 주정부가 소유한 란데스방크(지방은행)를 포함한 몇몇 금융회사들의 숨겨진 부실이 예상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독일 경제가 조만간 더블딥에 빠질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독일의 란데스방크 12곳은 금융위기에 따른 후폭풍을 극복하지 못하고 빈사상태에 빠져 있다.

독일 2위 란데스방크인 바이에른 란데스방크가 금융위기가 터지자마자 작년 10월에 일찌감치 연방정부에서 54억유로 규모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으며,베스트란데스방크 HSH노르트방크 등 3곳이 주정부 및 연방정부에서 공적자금을 받은 상황이다. 이들 란데스방크들이 은행권에서 차지하고 있는 여 · 수신 점유율은 2006년 기준으로 각각 25% 안팎 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일부 란데스방크와 모기지 여신전문 업체인 히포레알에스테이트(HRE),코메르츠방크 등 독일 내 주요 금융회사의 부실자산 규모가 8160억유로(1조2200억달러)에 달할 것(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최근 회복세를 타고 있는 독일 경제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살아나기 위해서는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금융부문의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이달 말 있을 예정인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 리더십 부재 현상은 독일이 극복해야 할 숙제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과 기사당연합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되기는 하지만,노동자들의 표를 의식해 분초를 다투는 금융부문의 개혁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계 은행의 한 주재원은 "독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메르켈 정부의 금융시장 개혁 조치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곳곳의 반대에 부딪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총선 이후 금융부문에 대한 개혁 조치가 얼마나 과감하게 시행되느냐가 독일 경제 완전 회생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크푸르트=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