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만 하더라도 이번 위기가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위기(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FRB 의장)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1년도 채 안 돼 위기가 진정되고 있다.

1929년 10월29일 주가가 대폭락한 이른바 '블랙먼데이'로 시작된 대공황은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안겨줬다. 미국 경제는 1930년부터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1933년엔 1929년에 비해 경제 규모(GNP 기준)가 27%나 줄었다. 주가는 90% 하락했고 실업률은 대공황 이전 8.7%에서 24.9%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번 위기에서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올해 -2.6~-2.7% 수준을 기록한 뒤 내년엔 2.0~3.0%의 플러스 성장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 독일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올 3분기부터 플러스 전환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주가는 반토막났다가 최근 하락폭을 거의 만회했고 한국은 1년 전 주가를 이미 넘어섰다.

글로벌 경제가 이번 위기를 이처럼 빠르게 극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마디로 '큰 정부' 때문에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경기부양책을 실시함으로써 파국을 막았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9100억달러를 편성해 집행에 나서는 등 위기 대응에 1조6100억달러를 퍼부었다. 중국 일본 영국 독일 등도 수천억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한국도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각국 정부는 국민이 자동차 등을 구입할 경우 세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현금으로 보상해 줌으로써 소비와 생산의 증대를 이뤄내고 있다. 경기 부양 착수 시점도 대공황 때는 4년이나 지난 후부터였지만 이번엔 위기 직후부터라는 점도 차이다.

대공황 때와는 달리 중앙은행 제도가 정비돼 있고 이를 통해 금융회사를 적극 구제한 것도 대공황 때와는 다른 점이다. 이번 위기 때 각국 중앙은행은 일제히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은행을 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공황 때 미국 중앙은행이 별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은행 파산에 손놓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다. 실제 미국에선 대공황 때 4년간 9000여개 금융회사가 파산했지만 이번엔 최근 1년간 파산한 금융회사가 100여개에 그친다. 영국과 독일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나 레알 히포(독일 최대 모기지 은행)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각국 정부가 G20회의 등을 통해 공조에 나섰고 특히 보호주의 배격에 함께 나선 것도 조기 진화에 큰 보탬이 됐다.

하지만 앞으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대공황 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공황 때인 1934년부터 1936년까지 경제가 큰 폭으로 반등하자 1938년부터 미국 정부는 긴축으로 돌아섰고 이 때문에 1938년 성장률이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것처럼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이 이번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각국의 재정건전성 문제와 자산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벌써부터 출구전략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경제가 충분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금리를 인상하는 등의 출구전략을 실행하면 경기가 고꾸라져 수년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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