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2002년 민영화돼 사명을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바꾸면서 'KT'상표를 여러 산업분야에 출원했다. 그러나 상표등록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절당했다. 상표권을 외국 기업에 먼저 내준 경우도 있다. 일본 산리오사가 KT에 앞서 휴대폰 스티커 등 분야에서 KT 상표를 등록한 것.KT는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해 1심에서 지고 최근 2심에서는 이겼지만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KT는 왜 이 같은 수난을 겪고 있을까. 상표 분쟁에 대한 법원 판례를 들여다보면 'KT'를 비롯한 각종 상표의 등록 요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KT'는 간단하고 흔해 상표 등록 안돼

현행 상표법은 '간단하고 흔히 있는 표장만으로 된 상표'는 등록할 수 없다고 돼있다. 상표 식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KT는 민영화 이후 KT 상표를 정보통신업을 비롯해 DVD플레이어,MP3플레이어에서 티셔츠,용접장치,믹서,이발기,정수기,등사기 등 온갖 산업분야에 출원했다. 그러나 특허청으로부터 등록된 분야는 정보통신업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KT가 잇따라 등록심판을 청구했지만 번번이 특허심판원에서 기각당했다.

이유는 한결같이 "KT는 영문자 두 자로 된 간단하고 흔히 있는 상표여서 상표법에 따라 등록될 수 없다"는 것.대법원은 지난 5월 우리금융지주의 '우리은행' 상표에 대해 "'우리'는 누구나 흔히 사용하는 말이어서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서비스업을 표시하는지 식별할 수 없다"며 무효로 판결했다.

그러나 식별력이 없는 단어가 합쳐져 상표성을 갖는 경우도 있다. 오리온은 레스토랑업에 대해 낸 '마켓O' 상표가 등록거절을 당하자 불복심판을 제기했다. 지난 5월 특허심판원은 "등록거절은 타당하지 않다"고 심결했다. 심판원은 "마켓은 상품 판매의 장소적 의미고 O는 알파벳 한 자 또는 도형 등에 해당해 둘다 식별력이 없으나 전체적으로 '마켓오' 또는 '마켓영'으로 호칭된다면 흔히 있는 표장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주지 · 저명하면 식별력 인정받아

간단하고 흔한 단어가 다른 단어와 합쳐지지 않더라도 단독으로 상표로 등록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미 주지 · 저명한 상표여서 식별력이 있는 경우다. KT가 KT 상표를 정보통신업에 등록해 놓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KT는 2006년 4월 KT 상표를 정보통신업에 출원했다 거절당하자 "KT는 2002년에 이미 정보통신업에서 브랜드 가치가 2조8570억원에 달했을 정도로 주지 · 저명한 상표"라며 불복심판을 제기,승소해 2007년1월 등록받았다. 그러나 정보통신업과 함께 출원한 교육방송업과 인터넷방송업에 대해서는 주지 · 저명성을 인정받지 못해 등록에 실패했다.

◆'글라스락'은 성질 표시해 등록 무효

상품의 성질이나 효능을 표시한 상표도 등록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건을 잘 만드는 회사''맛있는 아이스크림' 등은 특정한 사람이나 기업이 사용하는 상표로 인식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허심판원은 밀폐용기업체 락앤락이 삼광유리공업의 '글라스락(Glasslock)' 상표에 대해 청구한 등록무효심판에 대해 지난달 락앤락의 손을 들어줬다. 글라스는 유리,락은 잠그다는 뜻을 갖고 있어 밀폐용기의 성질을 나타낸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사람 이름은 성질이나 효능 표시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으나 법원은 대체로 상표성을 인정해주고 있다. 재단법인인 경기문화재단은 개인인 한모씨가 등록한 '백남준 미술관' 상표에 대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해석돼 성질을 표시한 상표"라며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지만 지난 5월 "성질만을 표시한 상표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당했다.

◆사용분야 다르면 무관

기존에 등록된 상표와 유사하면 새로 상표로 등록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침구업체 장수산업은 2000년 '잠자리' 상표를 등록받았으나 박모씨가 '장수잠자리' 상표를 2006년 등록받자 무효심판을 냈다. 특허심판원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에서 지난해 특허법원과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장수잠자리는 일반인에 익숙지 않은 곤충인 데다 잠자리의 일종이어서 '장수'라는 단어와 분리돼 '잠자리'로 약칭될 수 있다"며 등록무효를 심결했다.

하지만 기존 상표와 유사해도 사용 분야가 다르면 상표로 인정받을 수 있다. 2004년 콘도미니엄업 등에 'Haevichi' 상표를 등록한 해비치리조트는 개인인 김모씨가 지난해 문화재전시업에 '해비치' 상표를 등록받자 등록무효심판을 냈다. 특허심판원은 이에 "두 상표는 호칭이 '해비치'로 동일해 유사하지만 콘도미니엄업과 문화재전시업은 서비스 내용과 수요자의 범위,서비스 제공 주체 등이 중복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