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0%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예상되는 개발도상국 시장이 열렸을 때 가장 환호했던 것은 누구였을까? 바로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막대한 자본과 뛰어난 인재,오랜 경험으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들의 압승을 점쳤다. 그러나 이 예상은 곳곳에서 빗나갔다. 토종기업들이 '차별화된 혁신'을 통해 거대 글로벌 기업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경우가 속출했던 것이다.

보통 혁신은 기술적 진보(technology-push)에 따른 혁신과 고객의 요구(customer-pull)에 따른 혁신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토종기업들이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적 격차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토종기업은 후자,즉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요구를 철저히 파악하는 방법으로 혁신하는 경우가 많다.

1906년 설립된 멕시코의 시멘트 제조업체 세멕스(Cemex)가 대표적인 예다. 세계 3대 시멘트 제조업체이자 멕시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세멕스는 2007년 연매출 2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세멕스가 어떤 혁신을 통해 고객을 사로잡았는지 살펴보자.

원래 세멕스의 시멘트 배송 시간은 2일이었다. 하지만 멕시코는 기업환경이 불안정해 고객이 막판에 주문을 취소할 확률이 절반에 달했다. 고객들은 위약금을 물어야 했고,세멕스는 제품을 실어나르다 되돌아와야 하고 그 물건을 다시 쌓아둬야 하는 물류 문제가 발생했다. 세멕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성항법장치(GPS) 기반 통합 업무시스템을 개발했다. 트럭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고객의 공장에도 위성통신시스템을 달았다. 고객이 주문하면 가장 인접한 곳에 있는 트럭을 연결해 주었다.

또한 전 지역의 주문 현황을 추적할 수 있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개설했다. 교통 정체로 배달 업무가 지연될 때나 배달 마지막 순간에 고객이 주문 변경을 요청해도 즉시 내용을 변경하거나 행선지를 바꿀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전 세계 세멕스 공장에 적용됨으로써 배송 소요시간은 평균 20분으로 짧아졌다. 그 결과 주문 후 대기 시간 동안 취소 사례도 줄어 고객사들이 위약금을 내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

세멕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업 고객은 경기에 민감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개인 고객은 크게 경기를 타지 않았다. 세멕스는 이점에 착안해 안정적인 수요가 있는 멕시코 및 중남미 빈곤층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한국과 달리 직접 집을 짓는 경우가 많은 중남미 저소득층 고객을 위해 '오늘을 위한 기금(Patrimonio Hoy)'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일종의 '시멘트 계'다. 중남미 사람들은 시멘트를 살 만큼의 큰돈을 쉽게 모으지 못한다. 따라서 지역별로 3명이 모여 매주 일정 금액을 곗돈으로 내면 차례로 새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시멘트와 벽돌을 제공하는 기법이었다. 이와 함께 자금 대출,자금 계획 상담,건축 컨설팅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해 수요를 자극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행한 지 3년 후에는 약 4만명의 고객을 확보했고 10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토종기업들의 가장 큰 힘은 글로벌 기업보다 지역 소비자와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점을 잘 알고 적극 활용,차별화된 혁신을 하라. 다윗의 규모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

조미나 상무/윤혜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