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외롭고 불안하다.

젊어선 도통 알 길 없는 미래 때문에,나이 들어선 너무 빤히 보이는 앞날 탓에 안타깝고 두렵다.살다 보면 정말이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일,짐작은 하고 있었으되 차마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이 눈 앞에 바싹 다가와 있는 수도 적지 않다.

도망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부딪치기엔 너무 벅찰 때 여행은 출구가 된다.고행(苦行)에 가까운 여행은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까닭이다.일명 ‘카미노’(Camino·스페인어로 길)로 불리는 ‘산티아고 가는 길’(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인기도 그런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프랑스의 국경 도시 생 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를 일컫는다.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순례의 길이었던 카미노는 16세기 이후 폐허로 변했다 20세기 말 되살아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길을 통해 산티아고를 방문한 뒤 1987년 카미노 전체가 유럽 문화유산 1호로 지정되자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어떤 문명의 이기도 없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거친 산과 황량한 들판을 걸어가야 하는 길로 매년 50만명 이상이 찾는다.

2005년까지 공식방문객이 14명 밖에 안됐다던 우리나라 사람의 발길도 근래 급증했다.관련서적이 주목받으면서 인터넷에 동호인카페가 생겼을 정도다.순례자의 60∼70%가 여성으로 이유는 다양하다.헛된 욕망과 분노를 내려놓고자,넓은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자,자신을 격려하고자 등.

천주교·불교·원불교 교단이 전북 완주군·전주시·익산시와 함께 한국판 카미노를 만든다는 소식이다.전북 완주 천호성지에서 익산 나바위 성당과 미륵사 터,완주 초남이성지,전주 한옥마을,완주 송광사에 이르는 180km 구간으로 대부분 산과 논두렁,개천길을 이어 만든다는 계획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엔 길 외엔 아무 것도 없다.배낭을 짊어진 채 하루 20㎞이상 걷다 보면 배낭 속 콩 하나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면서 자신과 세상 모두를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한국판 산티아고 길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순례의 의미부터 확실하게 해야 한다.한국판 산티아고 길이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진정한 순례자의 길로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