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이나 기다려야 한다고요?"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사는 주부 이모씨(31)는 얼마 전 46인치 LCD(액정표시장치) TV를 사러 전자제품 매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돈만 내면 당일 배송에 설치까지 될 줄 알았는데 매장 직원으로부터 "요즘 TV를 사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물건이 달린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불황인데도 고가 TV는 잘 팔리는 모양"이라고 의아해했다. LCD 업계가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없어서 못 판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로 LCD TV가 세계 각지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어서다.

◆왜 LCD?

LCD TV는 2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대형 화면 제품일수록 값은 더 비싸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자제품 중에 유독 LCD TV가 잘 팔리는 이유는 HD(고화질) 방송 확대 등에 있다. 세계 최대 TV 시장으로 꼽히는 북미지역에선 지난 6월부터 HD방송을 시작했다. 기존 브라운관 TV로 이를 즐길 수 없는 소비자들은 별도의 셋톱박스를 구입하거나 신제품 TV를 사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였다. TV 업체들은 이 틈을 노려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결과적으로 TV 시장에 대규모 교체 수요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TV를 사면 보조금을 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정책을 펼친 것도 세계 TV 시장 확대에 일조했다.

LED(발광다이오드) TV 등의 신제품이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양상도 LCD 패널 공급을 달리게 만든 요인이다. 명칭은 LED지만 패널은 LCD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LG전자 관계자는 "47인치 기준으로 LCD TV보다 500달러가량 더 비싼 LED TV가 불티나게 팔리는 걸 보면 TV 시장의 고급화 트렌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상 뛰어넘는 호황가도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유리기판 크기가 더 큰 11세대 생산라인 투자를 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46인치,47인치,55인치 규격의 LCD TV 수요가 예상보다 크게 늘면서 두 업체는 이들 TV용 패널을 생산할 수 있는 8세대 추가 투자로 전략을 수정했다.

현재 LCD TV의 주력 사이즈는 30인치.하지만 소비자들이 점차 대형 화면 TV를 선호하면서 40인치대 시장은 2012년께 112억8000만달러 규모로 불어나 TV 시장의 중심 축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는 40인치대 LCD TV 시장이 올해 2600만대 수준에서 2013년께엔 4900만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앞다퉈 올 하반기 신규투자를 결정한 것은 이처럼 빠르게 커가는 시장을 상대방에게 내줄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엔 남아공월드컵과 밴쿠버동계올림픽 등에 따른 특수로 인해 40인치와 50인치 LCD TV용 패널 수요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 일 · 대만 경쟁 본격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추가 투자에 나서면서 한 · 일 · 대만 선두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일본의 선두주자는 샤프다. 세계 LCD 업계 5위인 샤프는 2006년부터 8세대 LCD 생산라인 가동을 시작했다. 오는 10월께엔 10세대 생산라인을 돌려 40인치와 50인치대 LCD 생산량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대만 업체들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 4위인 AUO는 지난 2분기부터 유리기판 기준 월간 약 7000장 규모의 LCD 생산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에는 30억달러를 투자해 두 번째 8세대 생산라인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후발 업체들이 앞다퉈 8세대 투자를 늘려나가자 삼성전자는 기존 8세대 생산라인에 3조원가량을 들여 내년 3분기부터 생산을 시작해 업계 선두 자리를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파주공장에서 월간 약 8만3000장을 생산하고 있지만 이번 추가 투자로 내년까지 11만장으로 물량을 확대,1위 다툼에 뛰어들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는 내년부터 업계 선두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