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정부가 법인세 인하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대외경쟁력 확보와 외국 기업 유치를 통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선 법인세 인하가 절실하지만 과감한 경기부양책으로 세수가 구멍난 상황에서 더 이상 감세를 추진할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7월4일자)에서 '이제 기업들이 정부의 세금 혜택을 기대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보도했다.

◆법인세 인하 릴레이 급제동

2000년대 들어 독일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 각국 정부는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외국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현재까지 30개 회원국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22개국이 일제히 법인세율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에는 독일(-9.1%포인트) 이탈리아(-5.5%포인트) 영국(-2.0%포인트) 등이 잇따라 법인세율을 추가로 낮추며 감세 경쟁을 가열시켰다. 이에 따라 OECD 국가의 평균 법인세율은 2000년 31.3%에서 2007년 25.5%로 낮아졌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법인세 인하 릴레이에 급제동이 걸렸다. 경기침체로 세수 기반이 줄어든 데다 미국(7870억달러) 영국(200억파운드) 프랑스(260억유로) 등 각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쏟아내면서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1조80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3.6%로 치솟고,일본(9.9%) 영국(9.8%) 스페인(7.5%) 등도 적자 폭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최근 '조세 포탈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버뮤다 케이맨제도 아일랜드 등 법인세가 낮은 지역 및 국가의 기업들에 대해 세금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도 최근 현행 25%의 법인세율을 2011년로 단계적으로 20%까지 내리기로 한 감세 계획을 유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기업 엑소더스…투자 위축 어쩌나

재정적자가 법인세 인하의 발목을 잡으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세계경제가 더욱 타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재정 관련 조사업체인 세계재정사무국(IBFD)의 달리 부조라 국장은 "지난 십년간 계속된 낮은 법인세 경향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법인세 인하가 단기적으로는 재정을 더욱 악화해 각국 정부에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투자 활성화와 해외 기업 유치에 성공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세수 감소분을 상쇄하는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자칫 높은 법인세율이 기업들의 '엑소더스'를 유발할 경우 더 큰 세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긴축재정으로 돌아선 아일랜드가 다른 세금은 다 올리면서도 유독 OECD 최저 수준인 12.5%의 법인세만은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IBFD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최악의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법인세를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