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털 옷을 만드는 뉴질랜드 업체 아이스브레이커는 모든 제품에 바코드가 인쇄된 꼬리표(tag)를 달아놓는다. 코드 번호를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각 제품의 재료로 쓰인 양털이 어느 목장에서 나왔고,누가 어떻게 가공해서 옷으로 만들었는지 등 구체적 정보가 뜬다. 게다가 사진과 동영상으로 양떼의 모습,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옷감을 짜서 재봉을 하는 과정까지 확인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니트 업체인 플록스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스웨터 장갑 목도리 등 제품마다 '패스포트(passport)'를 부착한다. 제품 원모(原毛)를 채취한 양 토끼 등 동물 사진과 함께 품종,몸무게,연령,태어난 농장 주소까지 밝혀 놓은 일종의 신상명세다. 심지어 옷을 염색한 염료의 재배지까지 표시된다. 미국의 커피 중간판매업체인 크롭투컵의 경우 커피 포장지에 인쇄된 코드를 통해 커피 원두를 수확한 농부의 신상정보와 연락처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상품 꼬리표의 역할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원료나 제조시기,세탁방법 등을 간단하게 적어 놓는 게 고작이던 꼬리표가 이젠 제품의 가치를 차별화하고 소비자의 믿음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제품을 소유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효과도 있다. 꼬리표를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믿음을 주고 받는 셈이다. 최근 유럽 미국 등지에서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꼬리표 경제(tag economy)'라는 말까지 생겼다.

우리나라도 꼬리표 경제의 초기단계에 들어섰다. 지난달 22일부터 의무 시행되고 있는 쇠고기 이력 추적제가 한 예다. 쇠고기에 붙은 라벨을 통해 소의 출생에서부터 사육,도축,유통을 거쳐 식탁에 오를 때까지 '이력'을 웬만큼 파악할 수 있다. 일부 화장품과 가구업체도 꼬리표나 포장에 재료나 성분,제조공정 등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신뢰확보다. 이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는 것은 물론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제품의 유해성분에서부터 제작공정,환경파괴 여부까지 따져보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머지않아 가짜 명품은 물론 유해식품,불량제품 논란이 자취를 감추게 되지 않을까. 꼬리표 경제가 그 출발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