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위나라 유학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공자는 "그것은 용서의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 · 기소불욕물시어인)"고 답했다 한다. 내가 상대편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으면 상대편도 나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하듯이,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좀더 현대적 표현으로 '관용'이라 할 수 있겠다.

'移木之信(이목지신)'.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재상으로 엄격한 법치주의의 기초를 닦았던 상앙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진 원인이 당시 만연했던 불신풍조에 있음을 간파한 그는 저잣거리에 나무를 심고 그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옮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상금을 오십금(五十金)으로 올린다. 지나던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즉시 약속한 오십금을 하사했다. 백성들은 그때부터 국가를 신뢰하게 되어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관용과 신의'의 중요성을 설파한 <논어>와 <사기>의 기록들이다. '인(仁)'의 근본이 결국 상대방에 대한 관용에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과,신뢰 구축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알려준 상앙의 일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관용과 신의'는 상호작용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베풀거나 선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 있어야만,즉 상호작용 하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력은 그리 길지 못하고 더 큰 반목과 불신의 씨앗이 될 것이다.

또한 '관용과 신의'는 화합의 기본요소이다. 어떤 형태의,어떤 규모의 조직이든 분열된 상태로는 발전도 더 나은 미래도 보장될 수 없다. 알다시피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이 화합이란 의미의 콩코르드(Concorde)광장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1000여 명이 처형된 곳이다. 프랑스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을 관용과 신의에 기반한 화합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 문제로 돌아오면,전세계적 위기의 파도가 국내로 밀려들면서 개인과 기업은 물론 사회 거의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고민의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은 좀더 나은 미래일 것이다. 그 밝은 미래를 우리 모두가 온전히 함께하기 위해서는 지금 서로에 대한 관용과 신뢰,이를 바탕으로 한 화합이 필요한 때다.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 kschoi50@youfir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