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달러가뭄'에 시달렸던 은행들이 최근 180도 다른 상황을 맞고 있다. 달러를 빌려주겠다는 해외 투자자들이 줄을 섰고 좋은 조건에 외화차입을 성공시키는 은행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외화 조달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사정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국민은행은 3일 달러 표시 고정금리부 채권 3억달러어치를 정부 보증 없이 공모로 발행했다. 만기가 3년인 이 채권 청약에 180개 이상의 투자자들이 참여,발행 금액의 9배가 넘는 28억달러가 몰렸다. 이에 따라 발행금리는 당초 투자자들에게 제시했던 것보다 0.1%포인트 낮아진 연 5.875%로 결정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아시아 · 태평양 지역 시중은행 가운데 정부 보증 없이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며 "국민은행이 첫 성공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4월 말까지만 해도 정부 보증 없이 해외채권을 발행하겠다고 하면 투자은행(IB)들이 어렵다는 반응 일색이었는데 5월 중순 이후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 5억3900만달러를 조달하는 데 그쳤던 수출입은행은 1분기 43억8700만달러를 차입한 데 이어 4~5월엔 20억1700만달러를 끌어들였다. 수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미국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약화되고 신흥국 채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초과 주문 현상과 함께 발행 금리도 최초 예정금리보다 낮게 결정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만기구조도 개선돼 하나은행의 외화대출 중장기 조달 비율(상환기간이 1년 이상인 외화대출 대비 만기 1년 이상 외화자금 조달 비율)은 금융감독원 가이드라인인 80%의 두 배에 가까운 150%를 기록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외화유동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이미 개설된 크레디트라인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0일까지 국내 은행들의 중장기(1년 초과) 외화차입 규모는 120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국내 은행들의 5년물 외화조달 평균 가산금리도 리보(libor · 런던 은행 간 금리) 기준으로 작년 1분기 6.24%에서 지난 4월 이후 4% 후반으로 떨어졌다. 한국물에 대한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1일 152bp(1bp=0.01%포인트)를 기록,작년 말보다 무려 164bp가 떨어졌다.

김인식/강동균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