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양이 처음 우리 사무실에 배치됐을 때 모든 사람들이 환영했다. 그녀는 밝은 성격에다 일에 임하는 태도가 적극적이었다. 높은 업무 생산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눈빛이 살아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그녀는 계약직이지만 정규직 업무도 능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 또한 정규직에 뜻이 있었다. 우리 대학은 정규직 채용 시 계약직 직원에 대해서는 1차 서류심사를 면제해주고 바로 2차 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인 정규직 채용에서 서류심사 면제는 작지 않은 혜택이다.

○양은 입사 후 1년이 지난 후 치러진 정규직 채용시험에서 안타깝게 떨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 일어났다. 그렇게 초롱초롱하던 눈이 생기를 잃었다. 일을 하기는 해도 의욕이 없는 듯했다. 그럴 만한 것이 계약은 2년으로 끝나게 돼 있어 그녀에겐 달리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그녀에게 해줄 것이 없어 안타까웠다. 계약직 2년 제한이라는 법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양은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계약 종료 6개월을 남겨두고 스스로 그만두었다.

○양의 케이스는 계약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법제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처럼 기간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는 원하는 기회를 상실한 순간부터 근로자는 무기력해지고 사용자는 생산성이 떨어져도 두고 볼 수밖에 없어 서로에게 어려운 상태가 된다. 만일 계약이 다시 2년간 갱신될 수 있다면 ○양의 경우 매년 실시되는 정규직 시험에 추가로 두 번 정도 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의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법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법대로 2년이 지난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정규직 일자리는 계약직 일자리와 엄연히 구분돼 있을 뿐 아니라 별도의 채용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기업의 핵심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이며 이른바 기업특수 인적자본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계약직은 기업특수 인적자본이 필요없는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즉 계약직은 정규직을 대체할 수 없으며 보완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법이 강제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강제는 ○양처럼 근로자를 내쫓고 일자리만 없애는 결과를 낳고 있다. 기간제한을 완화하면 계약 갱신을 통해 고용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해당기업에 필요한 자질을 키워 정규직으로의 전환도 더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다.

또 비정규직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으로 임금이 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에서 정규-비정규 임금격차는 10% 미만이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는 임금격차가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비정규직이 적게 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독점력으로 인해 정규직이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임금이 낮은 것이 아니라 정규직 임금이 높은 것이 문제다.

정부는 이처럼 비현실적인 현행 비정규직법의 기간제한을 완화하는 개정안을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했으나 환경노동위원장은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 위원장은 기자간담회 등에서 자신이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음을 명백히 했다. 어떤 회의체건 의장을 맡은 사람이 의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직권을 남용하는 비민주적인 처사다. 현행 법규가 제때 개정되지 않을 경우 7월부터 법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제2,제3의 ○양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부디 국회가 일자리 상실의 책임을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