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명 올해의 보험왕인 유현숙 설계사(40 · 용산브랜치)의 고객은 1200명에 달한다. 지난해 이틀,사흘에 한 건씩 141건의 신규 계약을 유치해 기존 계약 포함 총 보험료 수입으로 73억원을 올렸다. 유씨의 연봉은 10억원을 넘은 지 오래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유씨는 "오늘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밤 1시에 동대문시장으로 출근,상인들을 공략한다. 최근엔 중소기업 사장 등 고액 자산가나 수도권 토지보상금 수령자들로 고객을 다변화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보험사의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연도대상 시상식'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새 회계연도 시작과 함께 설계사 등 영업조직에 대한 1년간의 노고를 평가하고 축하하는 축제의 장이다. 각사 보험왕을 차지한 설계사의 연봉은 많게는 10억원을 넘는다.

억대 연봉은 반드시 보험왕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설계사는 지난해 기준으로 1만명을 넘는다. 외환위기 이후 설계사 직업이 고학력화,전문직화하면서 '프로' 설계사들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다. 21만명에 달하는 전체 설계사의 월 평균 소득도 지난해 309만원으로 처음으로 300만원을 넘겼다. 평균 연봉이 4000만원에 육박하는 전문 직종이다.


◆억대 연봉자 1만1000명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7 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에 연소득 1억원 이상을 번 설계사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1만1000명이다. 억대 연봉 설계사는 2002년 5000명을 넘긴 뒤 5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났다.

설계사의 월 평균 소득도 생명보험 368만원,손해보험 199만원 등 평균 309만원을 기록해 300만원대에 돌입했다. 고학력,남성 설계사가 많은 외국계 생보사의 설계사 월 평균 소득은 521만원에 달한다. 1997년 외환위기 전후만 해도 설계사들의 월 소득은 평균 100만원에도 못 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설계사 소득이 증가한 것은 설계사 조직이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로 변하면서 전문화하고 생산성도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액보험 연금보험 등 보험료가 많은 상품의 판매가 늘어나면서 수입 보험료 규모가 커진 것도 원인이다.

지난 10년간 설계사 수는 39만6000명에서 21만6000명으로 45.5% 줄면서 정예화했다. 대량 채용,대량 탈락하는 모집 관행도 개선돼 설계사가 한 회사에 1년 이상 근무하는 정착률이 지난해 42%로 2003년과 비교해 8.9%포인트 높아졌다.


◆억대 연봉 받으려면

설계사 수입은 새로 계약을 유치하면서 받는 신계약비가 60%가량을 차지한다. 여기에 기존 계약에서 나오는 수당과 기본 수당을 더해 받는다. 신계약비는 보험 상품의 종류,납입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초회 보험료의 4~9배에 이른다. 월 수입 925만원(연봉 1억1000만원)인 이모 설계사의 경우 한 달에 7~8건의 새 계약을 맺는다. 여기서 나오는 신계약비 수입이 56.2%인 520만원에 달한다. 또 기존 계약에서 나오는 수당이 290만원(31.4%),그리고 기본 수당 등으로 115만원(12.5%)가량을 받는다.

이들 억대 연봉자의 성공 비결은 뭘까. 대한생명이 지난해 자사의 2만5000여명 설계사 가운데 상위 1%에 드는 300명(평균 소득 2억2000만원)을 대상으로 성공 비결을 조사한 결과 56%가 '성실과 신용'을 꼽았다. 다음이 금융지식(13.3%),인맥(13.0%),자아 실현(10.4%),주위의 도움(7.3%) 등으로 나타났다. 흔히 영업 밑천으로 여겨지는 '인맥'과 '주변의 도움'은 억대 연봉 설계사로 성공하는 데 곁가지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답자 중 28%는 주말에도 고객 방문이나 경조사 참여 등을 통해 영업활동을 한다. 이들에게 일주일은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란 얘기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인맥도 물론 영업에 도움이 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계사로 성공할 수 없다"며 "금융상품이 다양해지고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최고의 금융 컨설턴트가 되려면 남들보다 한발 앞서 뛰고 더 많은 고객과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문에 참여한 억대 설계사들은 1인당 보유 고객이 710명에 이르고 매일 7명의 고객을 만나 상담하며 19통의 전화통화와 8시간 이상의 영업활동을 한다. 이들의 89%는 '자신의 첫인상이 좋다'고 말했으며 66%는 '말을 잘 하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보험 한 건을 체결할 때까지 평균 네 번 정도 고객을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사로 입문하려면

금융위기로 구직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설계사가 각광받고 있다. 보험업계의 등록 설계사는 지난해 6월 22만2340명에서 12월엔 32만1281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9월 교차판매 제도 실시 덕도 있지만 실제 보험 판매에 종사하는 설계사도 늘고 있다는 게 보업업계의 얘기다.

설계사란 직업은 1인 사업자로서 별도의 자본금 없이 창업이 가능하다. 특별한 밑천이 필요없고 경력 성별의 구분이 없으며 정년퇴직도 없다. 제2의 도전을 꿈꾸는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얘기다. 설계사가 최근 억대 연봉이 가능한 고소득 직종으로 탈바꿈하면서 사회적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보험사들은 경제위기가 고급 인력을 영입할 수 있는 시기라 판단해 구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화재의 경우 설계사 1만명을 충원하는 등 공격 경영에 나서고 있다. 보험업은 금융위기 와중에도 금융업종 중 경기에 후행하는 특성과 보수적 자산 운용으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영 현황을 유지하고 있다. 교육과 업무 지원,복리후생 등 대폭적인 지원을 하는 만큼 보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고 영업 경험이 없는 사람도 1년 정도 체계적 교육을 받고 나면 당당한 보험설계사로 활동할 수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