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의 제약사 화이자의 캐시카우는 고지혈증치료제인 리피도.지난해 전 세계에서 110억달러어치를 팔았다. 전체 매출 409억달러의 27%에 해당되는 거액이다. 요즘 화이자의 고민은 리피도의 특허권 만료기한(2011년 11월)이 다가왔다는 것.2년여 뒤 다른 제약사들의 복제약 양산으로 매출 급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특허는 인류의 건강은 물론 기업의 수익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실례로 휴대폰 부품은 120여개에 불과하지만 특허는 7만여개에 이른다. 당장 안테나에만 7000여개의 특허가 등록돼 있다. 따라서 기술력만 믿고 기존 특허에 맞서 싸우거나 공세를 피할 수 있는 특허전략없이 휴대폰 개발 및 생산에 나설 경우 패자가 되기 쉽다. 국내 중소기업 엠피맨닷컴은 1998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MP3플레이어를 내놓은 뒤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3개만 갖고 시장공략에 나섰다가 수십건의 특허소송을 당한 끝에 부도난 바 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의 기술개발은 세계일류상품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통해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특허가 없어 실속을 챙기기 힘들었다. 지식재산권 부담으로 신제품 개발을 마쳤는데도 제품 출시를 포기하고 결국 완제품을 수입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사례에서 나타난 대로 우리나라의 R&D(연구개발) 및 기술 경쟁력은 선진국보다 여전히 취약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올해 초 내놓은 '과학 · 기술 · 산업 전망 2008' 보고서에서 한국이 갖고 있는 특허의 상당수가 수준이 낮아 활용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 36만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인 IEEE(국제전자기술기술자협회)의 지난해 평가도 마찬가지다. 16개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세계 각국의 기업을 분석한 결과 특허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LG전자,LG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테크윈,SK텔레콤 등 6개사에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은 205개,일본은 43개 기업에 달했다.

글로벌기업들이 지식재산권을 무기삼아 국내 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고 특허소송 등을 통해 기술사용료를 요구하는 현실에서 향후 세계시장을 주도할 상품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리 말해 미래기술수요에 대한 정교한 예측을 통해 돈이 되는 길목을 특허 출원으로 선점하는 '매복형' 특허전략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요 메모리업체로부터 막대한 로열티를 받고 있는 미국의 샌디스크가 대표적인 회사다. 샌디스크는 삼성과 도시바 등이 플래시메모리 반도체의 저장능력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벌일 무렵 저장성 확대의 선결요건이 에러체크라는 점에 착안,관련 기술을 서둘러 개발한 뒤 특허 장벽을 쌓았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더라도 경쟁자로부터 지킬 만한 특허가 뒤받침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는 시대가 왔다. 이미 대기업들은 특허를 단순히 많이 내기보다는 로열티 등과 직결되는 특허나 다른 기업과의 특허 재판에서 도움이 될 만한 '강한 특허' 획득에 주력하는 실정이다. 자체 개발을 추진하면서 제3자의 특허를 매입하거나 유망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특허 획득 수단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특허싸움에서 돈 벌이가 되는 공격용 특허나 로열티를 안 줘도 되는 방어용 특허를 확보하는 지식재산권 중심의 기술획득 전략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