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설립된 축전지전문 벤처기업인 에너그린은 '기술력'만 믿고 산업용 축전지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친환경제품을 표방한 니켈금속수소 전지가 값이 비싸 시장의 철저한 외면을 받은 것.첫해 2억원의 적자를 낸 후 마지막 자산인 아파트를 담보로 2억8000만원을 마련했지만,시제품 재료비로 금세 바닥이 났다. 이때 손을 내민 곳이 기술보증기금이다. 기보는 당시 에너그린의 기술력을 믿고 최초 신청금액인 3억원보다 많은 5억원의 대출보증을 서줬다. 이후에도 기보는 에너그린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응원군을 자처하며,지난 6년간 18억2000만원의 기술평가 보증을 섰다. 에너그린은 현재 대기업 납품과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며 매출 100억원대의 탄탄한 벤처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이사장 진병화)은 실물경기 침체 등 위기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하기 위해 1989년 설립된 기술보증기금은 '기술금융'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20년간 한계상황에 내몰린 중소기업의 '수호천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기보의 올 한 해 보증계획은 사상 최대 규모인 17조1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 중 60%가 상반기에 집행될 예정이어서 시중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영세 중소기업들에는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는 기보는 신용보증기금과 달리 기술보증에 특화한 보증기관 역할을 수행해왔다. 자체 기술평가시스템(KTRS)을 통해 기술평가에 따른 보증을 실시하면서 경쟁력 있는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자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과 이노비즈 기업 등에 특화된 보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코스닥 상장기업 중 68.6%가 기보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지난 4년간 보증 실적을 분석한 결과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재무 구조가 취약한 업체 비중이 60.4%에 달해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기보는 총 보증 규모를 지난해 대비 4조6000억원 증가한 17조1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이 중 상반기에만 신규 공급되는 보증 규모(6조7000억원)의 60%인 4조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기보 관계자는 "재무구조보다 기술력에 더 지원의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민감한 부분이 있어 올해 보증 부실률 상승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부실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보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을 도입,보증지원 후의 기술력 향상 여부를 점검하고 지원 기업의 중요 경영 변동사항에 대한 점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기보는 중복 지원,과잉 지원 등 비효율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유사기능 통폐합 및 기능 재조정 작업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기보는 리스크관리팀 자금운용팀 등 6개 사업부를 3개로 통합하고,영업혁신팀 혁신기획팀 고객지원 등 3개팀은 폐쇄했다. 핵심 사업부서들도 기업의 창업부터 성장단계별로 지원할 수 있는 지원조직으로 간소화시켰다. 이에 따라 기보의 사업부서 편제는 창업지원부-기술평가부-기술보증부-채권관리부로 재편됐다. 운영조직이 없는 사업본부를 폐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보는 보증제도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기보는 올해 신규 보증의 41%인 3조2000억원을 기술 창업기업에 집중하고 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