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용어에 '마리아주(marriage)'란 말이 있다. 영어의 '메리지'처럼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로,와인과 음식 간의 '궁합'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레드 와인은 육류와,화이트 와인은 생선류나 닭고기 등과 '마리아주가 있다'는 식으로 쓰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과 음식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다. 옛 주당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막걸리는 밥처럼,약주는 반찬처럼,소주는 술처럼 즐겨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술과 음식 간의 마리아주로 풀면,탄수화물이 풍부한 막걸리는 밥삼아 먹을 수 있어 김치 등과 곁들이면 좋다는 의미가 된다.

약주는 '반찬'의 한 종류처럼 반주삼아 맛을 음미하며 마시기에 좋은 술이다. 막걸리나 약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는 호두나 잣,신선한 나물류처럼 독한 기운을 중화시키고 비타민이 풍부한 안주와 곁들여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 전통주와 음식 간의 마리아주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쌉쌀한 맛과 탄산을 지니고 있는 막걸리는 널리 알려진 대로 홍어와 좋은 궁합을 보인다. 홍어를 삭히면 톡쏘는 암모니아 성분이 생기는데 때로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이면 부드러우면서도 시큼한 맛이 홍어의 자극적인 향을 다스려준다. 시큼한 맛은 막걸리에 들어 있는 유기산 성분 때문인데 이는 갈증을 멎게 하고 신진대사도 원활하게 한다.

따라서 안주에 수분이 많으면 청량감이 떨어져 막걸리 특유의 풍미를 느낄 수 없다. 수분이 적고 기름기가 많은 파전,삼합 등이 막걸리와 마리아주를 이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약주는 이름 그대로 한약 성분이 들어간 술이다. 육회,생갈비 등 육류요리와 잘 어울린다. 약주의 개운한 맛이 식욕을 돋우고 고기의 기름진 맛을 입안에서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약주에 쓰이는 약재들을 알고 마시면 보다 좋은 궁합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미자주의 달착지근한 맛은 닭 훈제구이나 고등어구이의 담백한 맛과 조화를 이루며,은은한 향은 누린내나 비린내를 감싸준다. 인삼주는 피로 회복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약주로,삼계탕과 곁들이면 좋다.

입에 착착 감기는 알싸한 인삼향과 혀끝에 감치는 인삼의 진하고 깔끔한 맛은 삼계탕의 다소 역한 맛과 느끼한 국물맛을 잡아준다. 삼계탕집에서 식전에 인삼주를 한 잔씩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실주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형 와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복분자주는 장어와 함께 맛보는 것이 최적이다. 복분자의 진한 맛이 장어의 느끼함을 감춰준다. 또 복분자와 장어 모두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예부터 전북 고창의 명물로 풍천장어와 선운산 복분자를 꼽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매실주는 매실 향과 새콤한 맛이 어우러진 술이다. 새콤함은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매실주에 식초향이 상큼한 골뱅이무침을 곁들이면 특유의 새콤한 맛을 배가시킬 수 있다. 또한 매실에는 칼슘 흡수를 돕는 구연산과 사과산이 풍부해 멸치회무침 등 빼째 먹을 수 있는 고칼슘 생선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또 생선회와 곁들이면 매실의 청량감이 한층 살아나 횟집에서 매실주를 많이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디주는 복분자주보다 달콤함이 덜하다. 와인 전문가들은 이를 '드라이하다'고 표현한다. 드라이한 오디주는 등심 스테이크에서 맛볼 수 있는 육즙의 풍미를 느끼는 데 제격이다. 달콤한 술을 스테이크와 함께 마시면 맛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스테이크는 불에 익혔기 때문에 맛이 구수하고 스모키한 향이 나는데,상대적으로 단맛이 덜한 오디와 조화를 이룬다.

오디는 고혈압 억제 물질인 루틴 성분을 함유해 혈당저하 기능도 있어 육류에 제격이다. 오디의 은은하고 신선한 향은 단맛이 거의 없는 프레인 요구르트와도 어울려,요구르트 드레싱을 얹은 야채 샐러드나 요구르트 퐁듀와 곁들이는 것도 색다른 맛을 즐기는 방법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말도 남겼다. '밥 먹기는 봄같이,국 먹기는 여름같이,장 먹기는 가을같이,술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 밥은 따뜻한 것이,국은 뜨거운 것,장은 서늘한 것,술은 찬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음식과 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온도를 사계절 기후 변화에 빗대 재치있게 표현한 지혜가 돋보인다. 우리 술과 우리 음식 제대로 알고 마실 때 우리 것에 대한 애정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도움말=정창민 배상면주가 전통술연구소장, 신우창 국순당연구소장,이재우 불고기브라더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