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 자신의 이름 딴 유아복지센터 건립


"내 아이, 내 손자, 내 조카라고 생각하면 모른 척할 수 없어요. 그 아이들을 만나면 서울에서 하던 고민들이 다 허섭스레기처럼 느껴집니다. 그 아이들을 만나면서 작은 것에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또 감사하죠."

1991년부터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아프리카 구호지역을 20여 차례 다녀온 배우 김혜자(68)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복지센터를 아프리카에 건립한다.

김혜자는 20일 부천 영안모자 사옥에서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굴렐레 지역 내 '백학마을 OBS 김혜자 센터' 건립에 대한 협약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혜자는 "2년 전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이 '제일 가슴에 남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서 '제일 처음 간 나라가 에티오피아이고 지옥이 이런 곳이구나 생각했다'고 답했다"면서 "그때 백 회장님이 현지에 복지센터를 하나 짓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감사했지만 그게 이뤄지리라고는 크게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성사됐다"며 감격했다.

'백학마을 OBS 김혜자 센터'는 가난한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복지시설로 약 15만 달러의 기금을 영안모자가 전액 후원한다.

2010년께 완공될 예정이며, 유치원 건립 등으로 굴렐레 지역 최빈곤층 가정의 취학 전 유아 약 200명에게 혜택을 주게 된다.

영안모자는 OBS경인TV의 대주주이며, 김혜자는 지난해 OBS TV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를 진행했다.

김혜자는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다. 그곳에 코리안 빌리지가 있는데, 그 후손들은 가난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서 "그 후손들이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옛날 지폐를 보여주고 아리랑을 부르며 나를 환대해줬는데 잊을 수가 없다. 그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2004년 전세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10년의 기록을 담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해 10년간의 인세 전액을 월드비전에 기증한 김혜자는 지난달에는 남부 수단을 방문해 의료사업 지원을 위해 4천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현재 세계 103명의 아동을 1대 1 결연해 후원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프리카를 20여 차례 방문했다.매번 갈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

▲20일 전에는 수단을 다녀왔는데 아프리카는 왜 그렇게 상황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지난 100년간 싸움이 없던 날이 14일밖에 없다고 한다.

제일 큰 피해자는 여자들과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다.

수단은 길이 너무 험해 허리도 아팠지만 아이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번에 간 곳은 물이 웅덩이 물 밖에 없었다.

너무 더러워 헝겊으로 물을 걸러서 먹고 있는데 걸핏하면 콜레라에 걸리게 된다.

한해 한해 지나면서 조금씩 힘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돕고 싶다.

내 직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배우라 어디를 가든 방송국이 동행하고 그 영상이 소개되고 나면 후원 성금이 걷힌린다.

가서 아이들을 보면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3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아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재작년에 결연한 아동을 만났는데 걔가 어찌나 좋아했는지…. 내가 그동안 보낸 카드와 사진을 들고 나와 보여주더라. 너무 보고 싶고 잘 커주기를 바란다.

결연을 안 해도 현지에서 픽 쓰러지는 애들을 너무 많이 봐서 어디서 전쟁이 났다고 하면 그런 광경이 자꾸 떠오른다.

전쟁이 끝난 나라에 가면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제발 사망자 명단에 끼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살아서 별볼일없는 인생이라도 어른이 될 때까지는 살아야 할 것 같다.

나라가 가난하니까 아이들을 돌봐줄 수가 없다.

그런 나라는 외국에서 안 도와주면 애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아이, 내 손자, 내 조카라고 생각하면 모른 척할 수 없다.

서울에서 한 고민들이 걔네를 보면 다 허섭스레기처럼 느껴진다.

난 봉사하러 가는 느낌은 없다.

그저 그 애들을 위해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누구든지 가서 보면 이런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 아이들을 통해 작은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고 감사하게 된다.

그 자체가 또 감사하다.

지금 결연한 아이들은 2014년까지 돕기로 돼 있는데 그 이후에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어떻게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됐나.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영화 '정글북'을 떠올리며 아프리카에 가면 동물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고, 여행가는 기분으로 나섰다.

가난하다고 하지만 세끼 먹는 밥, 한 끼 정도만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현지에 가서 너무 놀랐고 계속 울기만 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계속 가게 됐다.

월드비전 직원이 가면 관심을 못 끌지만 내가 가면 관심을 끄니까.

그것을 통해 그곳이 얼마나 못사는지 미처 몰랐던 분들도 관심을 갖게 되시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가게 될 줄은 몰랐다.

--현지에서 변화를 느끼나.

▲(잠시 숨을 들이마신 뒤) 달라지기를 원한다.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 때면 굉장히 슬퍼진다.

왜 이렇게 끝도 없이 싸우고 굶고 아파서 죽는 것일까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늘길 바랄 뿐이다.

--이름을 딴 복지센터가 건립됐는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난 정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런데 백성학 회장님이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내게 헌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앞으로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시에라리온에는 '마담 킴스 프로젝트'가 있는데 현지에서 내 이름을 따서 아이들에게 목공예와 수공예를 가르치는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또 라이베리아에서도 내가 기부를 한 고아원에서 내 이름을 벽에 새겨놓았다.

너무나 가난하니 얼마 안 되는 돈을 기부해도 크게 받아들인다.

이번 복지센터를 통해 200명의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기를 바란다.

(부천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