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일전이 벌어지는 날은 기운이 다르다. 그것이 어떤 종목이든 한 · 일전은 국민들의 투지를 불태운다. 다섯 번씩이나 치열한 승부를 펼쳐야 했던 WBC도 매경기 승부욕을 불태우게 했다. 이렇듯 라이벌 관계는 자동차업계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동차업계에서는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의 렉서스 따라잡기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어떤 사양을 추가할 때도 "이건 렉서스에 없잖아,넣을 필요 없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차의 기함 에쿠스는 사정이 좀 다르다. 따라잡기에 마침표를 찍고 한발 앞선다는 느낌을 받게 한 것이다.

최근 자동차업계에서 에쿠스가 화두다. 3월17일 출시되었지만 아직 시승차를 타보진 못했고 미디어 프리뷰 때 기억을 되짚어본다. 2월 중순 치러진 에쿠스 시승회는 최근 현대자동차가 즐겨하는 방식대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론칭 전 기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카메라와 휴대폰을 빼앗은 채 진행했다. 현대차는 이날 에쿠스를 벤츠 S클래스와 렉서스 LS460과 함께 비교 시승하도록 했다. 진행 방식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자동차까지 성에 차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한국인이라는 점이 뿌듯했다.

자동차 전문지 기자를 처음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수입차와 국산차의 차이는 꽤 컸다. 모든 면에서 수입차가 월등했다. 이 절대적인 평가가 조금씩 달라지게 된 계기가 1998년 EF 쏘나타가 나오면서다. 감성품질을 내세우면서 한단계 올라섰다. 무조건 수입차가 좋다는 고정관념은 깼지만 그래도 국산차는 뭔가 부족했다. 항상 뒷북 치는 느낌이었다. 공부 잘하는 우등생을 따라잡기에 급급한 중간 그룹 같았다.

중간 그룹처럼 여겨졌던 현대차가 계속해서 그랜저,아반떼,뉴 쏘나타 등을 내놓으면서 무섭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네시스에 이르러서는 수입차와 어깨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번 에쿠스의 비교 대상이 2003년 발표된 렉서스이긴 했지만 눈으로 보는 디자인과 손에서 느껴지는 감성품질은 렉서스를 뛰어넘었다. 첨단 기술을 가득 장착해 승부의 쐐기까지 박았다.

그렇다고 아직은 완벽하게 렉서스를 뛰어넘어섰다고는 할 수 없다. 차의 내구성,기업문화,마케팅 형태,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따라잡기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렉서스보다 좋아 보이게 만든 품질 부분이다. 칭찬에 인색한 우리지만 가끔은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 영국이나 미국인들은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도 다른 나라의 차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자신들의 자동차가 최고라고 부르짖는다.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현대자동차는 분명 차 만들기에서는 칭찬 받을 구석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해주도록 하자.



모터매거진 편집장 kino2002@motor-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