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내달부터는 속도를 낼 계획이다. 금융위는 조만간 20조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 중 12조원을 은행별로 배분하고 상반기 안으로 40조원의 구조조정기금을 마련,부실의 전이를 막기 위한 방화벽을 쌓은 뒤 은행을 독려하면서 본격적인 개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우선순위는 부실 가능성이 있는 대기업에 모아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대기업 부실이 표면화되기 전에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번 주부터 채권은행을 통해 44개 대기업 계열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에 착수,불합격 판정을 받은 그룹에 대해서는 자산 매각 및 계열사 정리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평가에서도 부채비율과 이자지급능력,영업이익률 등 현금흐름과 관련된 핵심 지표들이 주된 잣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몇몇 대기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시간이 많지 않다고 보고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대기업들의 자구이행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주류사업을 매각한 두산이 모범적인 사례로 시장의 신뢰감을 얻는 게 중요하다"며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밥캣 인수에 따른 시중의 우려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하지 못한 동부와 대우건설 풋백옵션이 걸려 있는 금호도 현재 자산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속도감있게 진행되고 기업들이 주력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기금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의 부실채권뿐만 아니라 부실자산도 적극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해운업의 경우 운임 하락으로 놀고 있는 선박 100척도 이 기금을 활용해 매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자체 선박 없이 배를 빌려 용선 위주로 영업해온 해운사를 솎아 낸다는 방안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자산매각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진전이 없을 경우 부실자산을 사서 구조조정이 빨리 진행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도 보유자산의 시장 매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정부가 매입,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기술력 중심으로 평가,시장친화적 방식으로 선별지원하는 쪽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산업은행이 준비 중인 턴어라운드(회생)펀드 등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산은은 기술력은 있지만 재무구조 악화로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정상화시킨 후 원래 기업주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펀드를 운용할 계획이다. 산은 관계자는 "인수 후에는 재무전문가를 파견,기존 사업주가 경영을 계속하도록 도와주고 정상화된 후 되사도록 할 계획"이라며 "시범사업을 위한 업체 선정까지 끝났다"고 말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위기 이후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 방향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재무건전성보다는 기술력에 우선 순위를 두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