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작사 싸이더스FNH는 올 여름 개봉예정인 액션드라마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녹음 · 편집)에 한창이다. 영화 제작에는 200여명의 고정 배우를 비롯해 스태프,현장 식사 조달,홍보 · 마케팅,편집 · 녹음 등에 총 508명이 투입됐다. 2500명의 엑스트라까지 포함하면 고용인력은 3000명에 달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영화 한 편이 만들어 내는 일자리는 엄청나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공연 등 문화콘텐츠산업은 일자리 창출의 보고로 꼽힌다. 대졸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데다 노동집약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팬터지영화 '반지의 제왕'은 촬영지인 뉴질랜드에 영상산업 기반을 마련해 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미키마우스'가 한 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58억달러,'해리포터'는 28억달러에 각각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한 해 자동차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많다.

그렇지만 국내 상황은 거꾸로다. 불황에 따라 투자가 줄어들면서 제작 편수가 급감하고 있다. 독립영화를 포함한 극장용 장편 제작 편수는 2006년 110편,2007년 124편,2008년 113편에서 올해는 70편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 3년간 평균치에 비해 40편 이상 적은 숫자다. 활황기였던 2005년 87편에 비해서도 20편 정도 적다. 최평호 싸이더스FNH 전무는 "제작 편수 축소로 영화 편당 수익은 단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영화 시장 규모가 축소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업계에서는 이를 위해 국책은행이 영화펀드 조성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한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주최로 최근 열린 문화산업포럼에서 김정아 CJ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합작영화에 투자하는 1000억원 규모의 '글로벌펀드'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단기간에 국내 영화제작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대기업과 국책은행 간 '대형 매칭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10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되면 연내 20편 정도를 추가 제작할 수 있어 1만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활성화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는 데는 1만명이 투입된다. 어떻게 보면 대형 영화보다 고용창출 효과가 더 뛰어나다.

그렇다고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을 섣불리 늘릴 수 없는 건 물론이다. 국내에서는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송용 애니메이션의 사정은 다르다. 30분짜리 방송용 애니메이션 한 편 제작에 평균 4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편당 26부작으로 계산하면 연인원 1040명이 고용된다. 지난해 제작된 방송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총 36개.4만784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다행히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전망은 나쁘지 않다. 우선 오는 6월부터 미국의 방송시스템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채널 수가 급증하면서 애니메이션 수요도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애니메이션업계 입장에서 보면 수출 시장이 활짝 열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의 1%를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총량제' 규정도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희소식이다. 아울러 원화가치 하락도 호재다. 세계 애니메이션의 하청기지인 중국의 인건비가 위안화 가치 급등으로 한국보다 비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제작물 수주를 늘려 '세계 애니메이션 3강'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미국을 겨냥한 홍보 · 마케팅을 강화하고 수출 활로를 모색하는 한편,수주전에 적극 뛰어 들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외에 대형 뮤지컬도 상당한 일자리를 창출한다. 예컨대 1000석 이상 공연장에 걸맞은 뮤지컬을 만들 경우 편당 150~200개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뮤지컬을 장기 공연할 수 있는 1000석 이상의 전용관을 건설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현재 1000석 이상 전용관은 서울 잠실의 샤롯데극장뿐이다. 시장수요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업계에서는 1000석 이상의 뮤지컬 전용관이 서울에 6개,대구 부산 대전 광주 등에 각 1개 등 전국 10개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신도림역(대성그룹) 한남동(서울시) 잠실 올림픽 공원 등에 전용관이 건설되고 있는 것을 고려해도 올해 중 서울에 2개,지방 대도시에 4개 등 6개의 전용관을 추가로 착공할 필요가 있다. 극장 건립에는 하루 100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되며 연인원 5만명 이상의 고용이 창출된다.

융합형 콘텐츠 분야도 고용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에서 디지털 교재로 공부하는 '디지털교과서' 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유비쿼터스(U)러닝 콘텐츠 개발업체인 ESL에듀의 사례를 살펴보자.분필로 쓰던 칠판 대신 전자칠판(PDP TV에 터치스크린 기능을 탑재해 글씨를 쓸 수 있는 칠판)을 설치하고,학생들에게는 책 대신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타블렛PC를 나눠준다. 이로써 기존 글자 중심의 텍스트뿐 아니라 동영상 및 사운드로 학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ESL에듀는 2013년께 상용화를 목표로 솔루션 개발업체(LGCNS)와 기기업체(LG전자) 등과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해 현재 20개 학교의 2개 반에서 시범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ESL애듀는 지난해 영어교재만 융합형 콘텐츠로 개발하는 데 40명의 직원(프리랜서 포함)이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디지털교과서뿐 아니라 IPTV와 와이브로 게임,헬스케어 프로그램,셋톱박스 내장형 게임,쌍방향 드라마 서비스 등 융합형 콘텐츠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ESL애듀 한문환 사장은 "3D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융합형 콘텐츠 사업은 철저히 인력 산업"이라며 "디지털교과서 사업 등이 본격화되면 관련 인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