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멈춘 듯 보이죠.아닙니다. 호숫가에 고요하게 떠 있는 백조가 물속에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듯 물밑 투자 움직임은 치열하죠.이럴 때 손 놓고 있으면 경제위기 회복 단계에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

9일 베트남 호찌민시 다이아몬드 플라자.포스코 건설이 지은 이 건물에 자리잡고 있는 법무법인 로고스의 베트남 사무소는 에어컨 바람이 무색하리만큼 열기가 가득 차 있었다.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세계 각지로 기업들을 따라 진출했던 국내 로펌들의 해외 진출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잠깐 주춤하고 있지만 이곳 베트남만은 사정이 다르다.

신규 투자는 베트남 붐이 불었던 2007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규모 1위를 대한민국이 차지할 만큼 이미 많은 투자가 이뤄졌던 터라 아직까지 기존 투자에 대한 자문 업무는 활발하다. 게다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베트남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투자자들도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어 베트남 진출 로펌 대부분은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다.

로고스의 베트남 법인장 김의환 변호사(39 · 연수원 31기)는 "지금 같은 원화 약세 상황에서 신규투자가 이뤄지기는 힘들어 현재는 숨고르기 단계"라며 "그러나 기존 투자자들의 자문업무 외에 신규투자를 준비하는 기업 등에 대한 법률 자문수요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사정에 능통한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국내 로펌의 현지사무소를 내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평가한다. 한국 로펌이 이른바 '역샌드위치 효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역샌드위치 효과'란 최근 원화 약세로 한국 제품이 일본보다는 가격경쟁력에서 앞서고 멜라민 파동 등을 겪은 중국보다는 품질이 월등해 한국 제품이 각광받는 것을 말한다.

베트남에서 최장기간 체류하고 있는 한윤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역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베트남에는 로컬 로펌부터 미국계 로펌인 베이커앤매킨지까지 정말 수많은 로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최근 로컬 로펌에 비해 월등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자문료 수준은 미국계 로펌보다 낮은 국내 로펌에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어요. "

베트남이 국내 로펌에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언어장벽이 확실하다는 것.국내 로펌들이 가장 먼저 진출했고 현재도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의 경우 조선족 변호사들이 있어 경쟁이 극심하다. 조선족 변호사들이 중국말과 한국말 모두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반면 베트남의 경우 한국어에 능통한 현지 변호사가 없어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영어로 이뤄진다. 영어와 한국어 모두에 능통한 변호사를 많이 보유한 한국 로펌이 강점을 가지는 이유다. 율촌의 양은용 변호사는 "베트남은 법 체계가 아직 복잡해 법에서 허용된다고 해도 시행령에서 안된다고 하는 등 전문가가 아니면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운 규정들이 많다"며 "베트남어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법 체계에도 능통한 한국 변호사들이 실력을 펼치기에 좋은 토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양호한 여건에 힘입어 베트남에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개 로펌이 진출해 있다. 2006년 5월 로고스가 가장 먼저 진출했고 그 뒤를 이어 율촌,지평지성,정평이 진출했다. 소형 로펌인 법무법인 푸른도 김찬 변호사를 10개월째 베트남에 파견해 자문업무를 하고 있다. 이들 중 로고스,율촌,지평지성 등 빅3사가 각 로펌의 특화 분야에서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에 가장 먼저 진출한 로고스의 경우 현지 로펌화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할 정도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상태.한국에서 진출한 기업들 외에도 베트남 현지 기업들의 법률 자문 업무까지 소화해내고 있다. 율촌의 현지사무소는 국내에 있는 본사와의 협력을 통해 대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법률자문서비스를 주로 제공한다. 경남기업 등과 함께 하노이에 위치한 랜드마크 사업 PF(프로젝트파이낸싱)작업을 했고 현재는 일본 기업에까지 업무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평지성은 증권 · 금융 분야가 강세다.

현지 법인장인 김도요 변호사가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아 골든브리지의 베트남 금융사 인수 자문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정평은 부동산 개발 자문 업무 외에 법인 청산업무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호찌민=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