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요? 참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 "

물론 역설적인 표현이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순방 기회에 만나 본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인들은 국내 정치 얘기만 나오면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현지에선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세계적 경제 위기를 맞아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지갑을 닫는 바람에 수출 최일선에 비상이 걸렸음은 '불문가지'다. 호주의 모 기업 지사장은 "자동차와 전자 제품 등 주력품들의 수출 부진이 심화되고 있어 하루 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퍼시픽 플레이스 컨퍼런스 몰'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다이얼로그'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백 석의 좌석이 꽉 찼으며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할 정도였다. 한국에선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현지 진출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여성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경제조정부 장관과 거물급 경제인,지방의 주지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의 현지 기업인들은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 인도네시아 관료 및 주지사들과 줄을 대려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보르네오에서 자원 개발을 하고 있는 모 기업 사장은 "조림지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 고위 관료들을 만나려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서 저녁에 다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이 팜오일을 비롯한 바이오 에너지 원료의 주요 생산 기지로 떠오르고 있는데 막대한 화교 자본을 앞세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면서 피 튀기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유전 등 자원 개발은 98~99%가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1~2%의 성공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연스럽게 지난해 국회의 '해머 · 전기톱 전쟁판'과 오버랩됐다. 자원 개발을 위해 수십년간 정글을 헤맸다는 한 기업인은 "'해머 난장판'이 우리가 공들여 쌓아 온 이미지에 얼마나 큰 손상을 입혔는지 모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3월 국회 휴회를 맞아 의원들의 외유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의원 외교도 좋지만 또 다른 전쟁터인 수출 현장을 찾아 현지 기업인들의 애환을 들어 보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