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는 엘리 들로네가 그린 '마담 조르주 비제'라는 아름다운 여인 초상화가 한 점 걸려 있다.

제목 그대로 이 그림은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가로 유명한 비제(1838-1875)의 부인을 그린 것이다. 사실 비제의 명성이 워낙 높아서 그렇지 적어도 프랑스 내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만 해도 비제보다는 부인인 주느비에브 알레비가 더 유명했다.

비제에게는 참 안된 얘기지만 그녀의 인생은 남편이 죽은 후부터 피기 시작했다.

파리 사교계의 여왕,로스차일드 은행의 저명 변호사인 에밀 스트로스의 부인,인상주의 화가의 후원자,드레퓌스 중위 복권운동의 주도자,마르셀 푸르스트로부터 무려 180통의 편지를 받은 여인.이 모든 영예가 비제 사후에 주느비에브에게 주어진 것이다.

◆주느비에브에 눈먼 비제,오페라 주인공 닮아

주느비에브에게도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는 비제의 인생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게 그들의 운명이었던 걸 어찌하랴.파리음악원 시절 비제는 스승 자크 알레비의 딸인 주느비에브라는 매력적인 처녀를 만난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이 여성을 처음 본 순간 비제는 그만 열정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는 프란츠 리스트가 격찬할 정도로 탁월한 피아니스트가 될 재목이었지만 주느비에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처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주느비에브도 장래가 촉망되는 이 젊은이가 싫지 않았고 둘은 결국 1869년 결혼한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었던 비제는 결혼하고 나서야 자기 부인이 엄청난 사치의 화신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의 치장에도 열성적이었다.

자신을 지적 엘리트로 자부한 이 여인은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집안 형편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부모가 살던 집에 살롱을 열었다.

가엾은 비제는 이 철딱서니 없는 뮤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떠맡았다.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재능과는 무관한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생활에 한창 쪼들리던 1872년 비제는 보드빌 극장의 지배인인 레옹 카르발로로부터 한 오페라를 작곡할 것을 제의받는다. 문호 알퐁스 도데의 '아를의 여인'이라는 단편소설을 극화한 것이었다.

이것은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한 사내의 가슴 저미는 이야기다. 부유한 농가의 청년 프레데리는 어느 날 아를의 원형투기장에 갔다가 '벨벳과 레이스로 몸을 감싼' 한 매력적인 여인(이름이'아를'이다)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여인은 바람둥이로 소문나 청년의 부모는 둘의 관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게다가 한 목장지기가 나타나 아를이 자신의 연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결혼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번민하던 청년은 결국 오래 전부터 자신을 사모해온 비베트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러나 결혼 전날 밤 춤추는 아를의 모습을 본 후 다시금 열정에 휩싸인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자살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알퐁스 도데의 동명 소설 극화

도데의 리브레토(오페라의 대본)를 읽으며 비제는 12년 전 여름날 로마에 유학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아를에서 경험한 짜릿한 감흥을 떠올렸다.

그때 아를의 투우장에서 만난 이국적 열정은 그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감성을 일깨웠다.

'작은 로마'로 불렸을 만큼 로마적인 도시,아를은 한때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해서 스페인 문화의 짙은 영향을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특히 투우는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이 지방 사람들의 기질에도 잘 맞아 오늘날까지 가장 인기 있는 오락거리 중 하나다.

로마시대에 조성된 아를의 원형투기장은 본래 글라디에이터들이 사투를 벌이던 장소였는데 19세기 들어와 투우장으로 그 용도가 변경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잔혹 게임'의 현장에서 사람이 소를 죽이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둘 다 피를 보며 열광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엔 변함이 없다.

열정의 투우장에서 우리의 완고한 이성은 순식간에 무장해제 당하며 억눌린 야수적 본성은 당당히 고개를 쳐든다. 이곳에서 관객은 타자의 죽음을 보며 열광한다.

그곳에서 투우사와 황소는 목숨을 담보로 죽음의 시소게임을 펼친다. 그 격정적인 레이스는 남녀 간의 사랑의 줄다리기와 사뭇 닮았다.

선홍색의 물레타로 황소를 유혹하는 투우사는 붉은 장미로 남자를 유혹하는 팜파탈을 연상케 하며 그 붉은 색 천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황소는 남성의 맹목적인 열정을 빼다 박았다.

결국 황소는 투우사의 치명적 유혹에 취해 물레타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꾼다. 투우장에서 만난 아를의 여인은 곧 투우사를 상징하며 그녀의 유혹에 취한 프레데리는 결국 자신의 열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황소의 운명과 부합된다. 아를은 프레데리에게 있어 팜파탈이었던 것이다.

◆열정적 감성 표현 위해 오페라 관행 파괴

비제는 무엇보다도 순박한 열정의 사나이 프레데리가 맘에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레데리의 열정을 자극한 미지의 여인 아를의 존재 속에서 그는 자신을 첫눈에 사로잡은 주느비에브를 발견했다.

그는 그 첫 만남의 설렘과 애타는 감정을 오선지 위에 옮겼다. 그러나 전통 오페라의 빡빡한 규범으론 도저히 자신의 열정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것은 감성의 목을 조이는 폴로 스웨터였다. 그는 결국 전통 오페라의 규범을 깨는 전위가 된다. 새로운 내용은 새로운 형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작곡자의 감성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을 융통성 있게 조정했다. 그는 서양음악사상 최초로 클라리넷 대신 알토 색소폰을 도입했다.

또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음을 동시에 연주함으로써 그것이 청중의 귀에서 섞이도록 했다. 이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팔레트에서 색을 혼합하지 않고 대신 화폭에 직접 원색을 병치함으로써 그것이 관람자의 눈속에서 혼합되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였다.

도데의 대본은 실패했지만 비제의 음악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를 가난의 늪에서 건져주진 못했다.

1875년 5월29일 '카르멘'이 생각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해 실망하고 있던 비제는 자신이 인후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센 강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만 웃통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닷새 후 그는 짧고 고단한 그러나 열정으로 가득찬 생을 마감한다. 주느비에브에게 눈먼 그의 불같은 삶은 아를에 눈먼 프레데리의 그것을 그대로 닮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비제의 예술혼은 오늘도 전 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떠돌며 관객들을 향해 열정의 그물을 던지고 있다. 어떤가,당신도 한번 그 그물에 걸려들고 싶지 않은가? 그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사슬에.

정석범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