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8년 중국 후한(後漢) 말기,양쯔강 남안 적벽(赤壁).북쪽의 공손찬,여포,원소 등을 모두 꺾고 남하한 조조가 천하 제패를 위해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과 대치한다. 연합군을 이끄는 건 손권 쪽의 젊은 명장 주유와 유비 쪽의 책사 제갈공명.내유외강의 지략가들이다.

싸움은 심리전의 연속이다. 조조가 보낸 전염병 사망 병사의 사체 때문에 주유의 군대는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자 주유는 조조의 밀사를 이용,조조로 하여금 휘하 장수인 채모와 장윤이 거짓 투항한 자라고 믿게 함으로써 수전(水戰)의 달인인 둘을 죽이게 만든다.

그러나 손권의 전력(戰力)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화살도 없다. 공명은 안개를 이용,허수아비를 실은 배 20척으로 조조 진영에서 화살 10만개를 얻는다. 그렇더라도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태에서 방법은 화공전(火攻戰)뿐.첩보에 따르면 조조의 군함은 끈으로 엮여 있어 화공을 받으면 그대로 전멸이다

화공에 성공하자면 북서풍인 바람이 동남풍으로 바뀌어야 한다. 제갈량은 장담하지만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급기야 주유의 부인 소교가 홀로 조조에게 가서 공격을 늦춘다. 바람은 바뀌고 전투는 조조의 참패로 끝난다. 조조의 천하 통일 꿈은 무너지고 손권과 유비의 세력은 커진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의 개요다. 널리 알려진,결말이 뻔한 내용인데도 국내에서만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적벽대전이란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원인에 대한 해석은 간단하다. 800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웅장한 스케일,화려한 출연진,감독의 명성 등.

거기에 기존의 텍스트를 완전히 재구성해낸 힘이 더해졌다고 한다. 실제 영화는 모든 면에서 불리했던 손권 · 유비 연합군의 적벽대전 승리를 제갈량 한 사람의 지략이 아닌 주유의 침착함과 결단,손권 동생인 손상향의 용기,주유 아내인 소교의 희생정신이 합쳐져 이뤄진 것이라고 말한다.

안개와 바람을 부른다는 제갈량의 솜씨는 실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다. 적벽대전의 반전은 우연이 아니라 전투를 둘러싼 모든 상황에 대한 분석과 끈질긴 기다림,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힘겨운 때일수록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