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올린 연극인 손숙씨의 결혼식은 눈물 바다였다.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딸을 보던 어머니가 참다 못해 울음을 터뜨리자 신부도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고,일가친척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던 것.그날 손씨는 죽는 날까지 절대로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멀쩡히 생존해 계시면서도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아버지,딴 살림을 차려 어머니와 가족들을 내팽개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씨는 아버지를 용서했다. 손씨는 "부모 · 자식 간의 용서와 화해란 펜으로 줄 긋듯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아닌가보다"며 "인연을 끊을 수 없으니 오랜 시간을 두고 서로가 허물을 받아들이는 동안 화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용서는 사람 사이에 물길을 튼다》(바오로딸)에는 가족과 동료 등 가까운 사람때문에 상처를 받은 손씨 등 6명이 상대방을 용서하고 화해를 이룬 이야기가 신앙고백 형식으로 실려 있다.

천주교 청주교구 감곡 매괴성모순례지성당의 김웅렬 주임신부는 군종 신부 시절 형제처럼 여기던 총무 시몬으로부터 배신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기부금으로 성당을 짓고 있을 때 시몬이 돈을 몽땅 챙겨 달아나는 바람에 김 신부는 건설업자의 폭행에 시달리며 화병까지 앓아야 했다.

마음에 칼을 품고 3년 동안이나 복수를 다짐했던 그는 그러나 "나랑 인연을 이어가고 싶으면 그를 찾아가 용서해주고 끌어안아라"는 '스도 형님'(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시몬을 찾아가 마침내 용서하고 화해했다.

이 책에는 이 밖에 남편 명의의 땅을 팔아준다며 서류를 챙겨서는 그 돈을 시동생에게 줘버린 시아버지를 용서한 며느리,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용서한 아들,고부갈등이 심했던 시어머니와 번번이 사업에 실패해 갖은 고생을 하게 만든 남편을 용서한 며느리의 이야기 등이 신앙고백처럼 실려 있다. 232쪽,85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