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제과점 여주인을 납치한 범인에게 몸값으로 건넸던 수사용 모조지폐가 시중에서 잇따라 발견되면서 위폐가 광범위하게 유통됐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은 "위폐는 신경쓰지 않고 범인 검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사실상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잇따라 발견되는 위폐 = 지난 21일 오후 5시께 종로3가의 한 복권가게에서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1만권 지폐를 내고 복권 1장을 구입했다.

가게 주인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로 이 지폐를 입금하던 중 진폐와 다른 점들을 발견해 신고했고, 경찰은 이 지폐가 지난 10일 제과점 여주인 납치범 검거를 위해 사용한 모조지폐라는 것을 확인했다.

앞서 지난 17일 오후 4시20분께 종로구 종로3가의 한 포장마차에서 3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어묵을 먹고 1만원권 지폐를 낸 뒤 사라졌는데 이 역시 위폐였다는 사실이 25일 확인됐다.

지난 22일에는 중랑구 망우동의 한 가게에서도 모조지폐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과 위폐가 발견된 곳 인근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분석한 결과 위폐를 사용한 남성이 범인 정승희(32)일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접수된 대부분의 신고가 위폐를 받은 이후 몇분 내에 이뤄졌다"며 "현재까지는 위폐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유통되기보다는 정씨가 순간순간 직접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 우려 확산 = 이로써 위폐 피해 사례는 모두 4건으로 늘었다.

문제는 정씨가 오토바이를 구입하면서 위폐를 처음 사용했다던 당초 경찰의 발표보다 2시간 앞선 시점부터 위폐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
앞서 경찰은 정씨가 17일 오후 6시15분께 위폐 1만원권 700장을 이용해 250㏄ 오토바이를 사들이면서 처음 위폐를 사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최근 확인되는 위폐 유통 사례는 오토바이의 경우와 달리 모두 낱장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위폐가 이미 시중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씨가 서울시내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경찰로부터 건네받은 7천만원 상당의 위폐 가운데 상당액을 진폐에 끼운 낱장 사용 방식으로 교묘하게 유통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손 놓은 경찰 = 위폐 피해자가 잇따르면서 사회적인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경찰은 위폐 유통에 대해 손을 놓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중인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위폐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범인 검거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말해 이번 사태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대해 경찰 주변에서는 범인 검거 작전에서의 잘못된 대응으로 위폐 유통의 빌미를 제공한 경찰이 사태를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고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위폐가 범인의 손에 들어간 이후 경찰이 보인 허술한 대응 방식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 17일 정씨가 강남에서 오토바이 구입을 위해 처음으로 위폐를 사용했을 때 위폐의 특징을 상세히 공개하고 시민의 주의를 당부하기는커녕 이를 숨기는데 급급했다.

경찰은 위폐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지난 18일 이번 사건에 사용된 수사용 모조지폐를 전격 공개했지만, 이때는 이미 정씨가 수차례 위폐를 사용한 뒤였다.

결국 경찰의 은폐ㆍ축소가 제2, 제3의 위폐 피해를 불렀고 애꿎은 시민만 불안에 떨게 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위폐 유통 사태에 대한 경찰의 공조 수사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양천서 관계자는 "어제 오후까지 서울경찰청이나 관할서인 중랑서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해 위폐 신고가 들어온 이후 이틀간 공조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