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진동수' 2기 경제팀이 공식 출범한 지 2주도 채 안 돼 매머드급 조치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주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100% 보증과 중기대출의 일괄 만기연장이라는 초법적 조치에 이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그동안 금기시됐던 공적자금 카드까지 공개했다.

공적자금 조성은 1997년 외환위기를 연상시키고 경제불안 심리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서는 가장 쓰고 싶어 하지 않았던 조치다.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만큼 국가재정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정부로서는 그만큼 현 상황이 심각하고 향후 경기회복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이날 국회 업무보고에서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인 은행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안을 4월 중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정부의 판단을 깔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제도인 만큼 공적자금 투입요건을 완화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로써 정부가 지난 외환위기 때 썼던 정책적 수단은 거의 모두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기업이 자산 매각시 양도세를 감면하고,금융회사가 포기한 채권 손실액을 손금산입(세법상 비용처리)하겠다는 것도 외환위기 직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조세특례제한법 지원 내용들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지금은 한 달 뒤의 상황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필요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할 수 있는 재원과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선의 상황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을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실상 '경제 계엄령'에 준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는 배경에는 실물경제 부양을 위한 무제한의 지원 조치로 인해 기업 구조조정 원칙이 퇴색할 것이라는 여론을 차단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준비한 뒤 부실화됐거나 부실징후가 있는 업종과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부실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부실채권 처리를 위해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유입시켜 원활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은행이 만들기로 한 구조조정펀드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의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등을 매입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진 위원장은 "부실채권이나 자산 등을 싼 값에 매입해 비싼 가격에 되파는 '턴어라운드펀드'를 비롯해 앞으로 구조조정펀드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활성화될 때까지 산은과 자산관리공사가 '시드머니'를 넣겠다는 것이다.

재정부도 추경을 활용한 과감한 재정투입과 파격적인 세제감면 카드를 내놓는 등 금융과 실물 양쪽에서 입체적인 양동작전을 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2기 경제팀이 비상상황을 감안,시장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관(官) 주도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정책의 강도도 1기 경제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