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겠다는 다짐도 쉬쉬해야 하다니…."

지금은 해체된 옛 대우그룹 소속이었던 대우인터내셔널이 지난해 11조458억원의 매출을 올려 창사 이래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눈높이를 올려 매출 목표를 상향했다. 정부가 마이너스 성장을 우려할 만큼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예년 같았으면 언론에 보도자료도 뿌리고,한껏 자랑해야 할 일임에도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은 혹시나 튀어나온 못이 매를 먼저 맞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목표를 잡으면서 후퇴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내부 결속을 위한 계획일 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경쟁하는 다른 종합상사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가 이해가 간다.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은 올해 경영 목표 기조를 '일시 후퇴'로 잡았다. SK네트웍스는 사업 계획이란 말을 아예 쓰지 않고 대신 '서바이벌 플랜'을 짜고 있을 정도다. 삼성물산(상사 부문) 관계자 역시 "작년에 워낙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올해는 다소 후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LG상사도 "(예년보다 못한 것으로 예측한) 증권사 전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올해 사업 계획을 잡기 위해 전체 임원 회의를 소집했는데 잘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부서가 없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외부 환경이 워낙 불확실하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데 더 의존하더라는 것이다.

문제는 대우인터내셔널의 속사정이다. 이 회사 경영 계획에 대해 업계는 "요즘 같은 때 작년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매각을 앞두고 몸값 떨어질까봐 그런 것이겠지"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낙관'이 업계에서는 채권단을 의식한 가식적인 행동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성이란 잣대만 놓고 보면 비관론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호랑이를 그리겠다고 작정하면 최소한 여우라도 그릴 수 있다'는 격언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올해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 M&A를 앞둔 기업의 비애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