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10일 `용산 참사'의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경찰복을 벗었다.

경찰청장 내정자가 특정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사퇴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연초 청와대 주변에서 권력기관장 인사가 거론되기 시작할 때부터 일찌감치 다른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경찰 조직 내에서의 입지가 확고했다.

그러나 청장에 내정된 지 이틀만인 지난달 20일 예기치 않은 용산 사고가 터지면서 경찰총수로서의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23일 만에 낙마했다.

그는 용산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서울경찰청장으로서 진압을 책임진 지휘부 라인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책임론의 중심에 서게 됐다.

특히 사고 직후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압작전 때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욱 코너로 몰렸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원탁대화'에서 "지금은 (김 청장의) 내정 철회를 할 때가 아니다"고 밝히면서 그가 용산참사의 벽을 뛰어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검찰의 무혐의 결정을 받은 직후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판단과 함께 자진사퇴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찰 내부에서는 그의 퇴진을 아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경찰청장 교체설이 나돌 당시 경찰조직 내에서 "김석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말이 널리 나돌았을 정도로 부하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고 친화력이나 업무처리 능력 또한 탁월했기 때문이다.

1979년 경찰간부 후보를 수석 졸업하면서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일본 경찰대학에서 연수하고 다년간 일본 주재관 생활을 하며 선진 경찰 제도에 밝다는 평을 받아 왔다.

특히 경찰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를 창안하는 등 기획력이 뛰어났고 경찰 수사권 독립을 강력 주장하는 등 `소신파'의 이미지도 강했다.

하지만 관운(官運)'은 그에게 `경찰청장'의 문턱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내정자 신분 내내 사퇴압력에 시달리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최소한의 명예만 지킨 채 30년간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