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하벙커에서 '경제 워룸'을 가동하며 경제위기 극복에 몰두하다 보니 다른 문제들이 안중에 없었던 것일까,아니면 경제를 되살리는 데 철벽 같은 법과 질서를 세우는 게 급선무라 여긴 탓일까,그것도 아니면 경찰청장 내정을 해놓고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참사는 벌어졌고 정부의 책임 또한 모면할 길이 없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유감없이 악명을 뒤집어썼다. 욕도 먹을 만큼 먹었다.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온갖 악명 속에서도 꿋꿋이 맞서다 결국 촛불시위로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용산참사로 엄동설한에 거리로 내몰린 오갈 데 없는 철거민들을 진압하다 6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비난까지 받게 됐다.
사실 악명 그 자체는 사회에 퍼진 일종의 세평에 불과하다. 악명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필요한,무릅써야 할 악명일 수도 있다. 누가 무엇으로 악명이 자자하다면 그 뒤에는 그 누구의 무엇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린 사람들과 그들이 공유한 견해들이 깔려 있게 마련이다.
민주당은 지난 연말 이른바 입법전쟁을 벌이면서 'MB악법'이란 용어를 만들어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이후 여야협상을 통해 금방 드러났듯이 정작 문제된 쟁점법안은 신문과 대기업의 종합편성채널 지분 허용,신문 · 방송 겸영 인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미디어 관련법과 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시 한나라당이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한 85건의 법안을 'MB 악법'이 총망라된 '반민주 친재벌 악법의 결정판'이라고 비난했다. 'MB악법'이란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표현의 자유이고 또 어떤 법안들을 '악법'이라고 규정할 것인지도 각자의 정치적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어떤 법안들을 '악법'이라 부르는 순간 이미 그 선악에 대한 절대적 심판권을 스스로 장악해 행사한 것이 된다. 그로써 그 법안들을 악법으로 규정한 사람들의 세계관과 견해가 고스란히 진실인 양 사람들의 의식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의 악명을 부각시킨 용산참사에 대해 경찰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참사는 애도하더라도,그 책임을 경찰에 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찰의 주장에도 경청할 만한 구석이 있다. 법질서 확립을 위한 공권력 투입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용산참사 문제를 'IMF 이후 어려워진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짓밟힌 사건'이라고 해석하지만,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는 이 반독재투쟁 시절의 상투적 프레임을 적용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진실은,검찰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하겠지만,훨씬 더 착잡할 것이다. 불법 · 폭력시위는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고 과잉진압에 대한 경찰책임도 물어야 하지만 균형을 잡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일관성 있는 법 집행의 시그널을 보내고 또 그렇게 실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왕 악명을 떨칠 만큼 떨쳤고 욕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이제 정부가 할 일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악명을 무릅쓰고 기축년 소처럼 뚜벅뚜벅 제 길을 걷는 수밖에.언론도 냉철해져야 한다. 현실을 단순화해 촌철살인의 악명들을 뱉어 내는 정치인들의 선전전을 혹여 언론이 아무 생각 없이 닮아가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