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미끄럼틀에 올라탄 느낌이다.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을 비롯 소득도 투자도 소비도 뒷걸음질이다. 우리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해온 수출마저 두 자릿수 감소세를 면치 못한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경제기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으니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는 점차 사그라져만 간다. 주가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자산규모는 반토막 신세가 된 지 오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조차도 알게 모르게 임직원들을 내보내면서 감원에 나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익 등 경영지표가 급격히 악화되며 연일 어닝쇼크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비정규직 · 여성 등 취약계층이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어 더욱 우려가 크다. 게다가 건설 조선업계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실업자들이 한층 늘어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청년 백수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들을 받아주기는커녕 있는 사람마저 밀려나고 있으니 실업문제는 그야말로 화급한 현안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운동을 통해 고용유지에 나서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정부는 공기업의 대졸자 초임을 삭감키로 하는 한편 임금과 근로시간을 줄여 잡 셰어링에 나서는 민간기업에 대해서도 세제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할 예정이다. 지금 같은 경제 상황에서는 있는 일감을 나누는 외에 뾰족한 묘수가 없는 까닭이다. 오죽했으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잡 셰어링의 필요성을 강조했겠는가.

실제 기업들 사이에서는 잡 셰어링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임원급을 중심으로 한 임금삭감과 임금반납에는 주요 대기업들도 거의 예외가 없고, 전 임직원들이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아내리는 케이스도 줄을 잇는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취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경총과 한국노총이 손을 잡고 일자리 지키기에 나서기로 합의한 상황이어서 이런 추세는 더 확산돼나갈 가능성이 높다.

잡 셰어링은 기득권계층의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운동을 주도하겠다는 정부 스스로는 고통분담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올해 공무원 임금을 동결하고 신규 채용도 줄이기로 했지만 그 정도로 고통분담에 동참했다고 인정해주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게다가 신규채용을 줄이는 것도 기존 공무원들의 기득권 양보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자신들은 임금을 그대로 다 받으면서 공기업과 민간기업에 대해서만 삭감을 운운하는 꼴이니 모양새가 참 고약하다.

공무원들 역시 어느 정도의 임금 삭감은 감수해야 사리에 맞고 호소력도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전체 공무원의 참여가 쉽지 않다면 중앙정부부터,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장차관급 등 고위지도층부터 고통분담에 동참한 후 순차적으로 범위를 넓혀도 무방하다. 올해는 공무원 임금지급의 재원이 될 세수도 대폭 감소할 게 불보듯 뻔한 상황이고 보면 필요성이 더욱 크다. 그렇게 모은 자금은 기업 고용 지원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에 활용하면 될 일이다.

국회의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민의를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국회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한 국민들과 어려움을 함께하기는커녕 폭력을 동원한 정쟁이나 벌이고 골프외유나 즐기고 있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잡 셰어링 운동이 성공하려면 지도층들부터 고통분담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